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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달력


BY 박 진 2007-12-04

아버지와 달력

 

박영애

 

우수도 지난 온화한 날씨. 살갗을 스치는 바람의 감촉이 부드럽게 느껴진다. 화사한 봄날씨만큼이나 마음 또한 여유로움과 기대감으로 충만하다. 봄은 모든 이들이 적당히 설레는 마음으로 한 해의 목표를 향해 새롭게 출발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우리집에도 새내기가 둘이나 있어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다. 아이들은 네 살 터울인데 작은아이가 생일이 빨라 한 해 일찍 학교에 가게 되어 3학년 차이가 나다보니 중, 고등학교에도 같이 입학했고, 올해에는 대학교와 고등학교에도 같은 시기에 진학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새 학기 준비로 교복과 공책, 가방 등을 사며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정성을 다해 책표지를 싸주시던 낡은 기억 속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386세대에게 있어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 페이지다.

그 때는 모든 것이 참으로 귀하던 시절이었다. 새 학년이 되면 아버지는 철지난 달력을 이용해 책을 싸주셨다. 책을 싸시는 아버지의 손은 거의 달인에 가까웠다. 큰 달력 한 장을 책의 크기에 맞게 잘라 표지 안쪽으로 접어 넣어 얌전하게 테이프로 고정시키는 일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는 나는 너무나 신기하고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그 일은 새 학년이 될 때마다 치러졌고, 아버지만의 특별한 세레머니였다. 산뜻하게 옷을 입은 책을 가방 속에 가지런하게 세워서 넣어두면 그 어떤 선물을 받은 것보다도 마음이 뿌듯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더욱더 존경스러웠다. 아이가 셋 이다보니 커갈수록 싸야할 책의 숫자는 늘어갔고 더 많은 달력이 필요했다. 요즘은 흔하디흔한 것이 달력인데 그 때는 그것조차 귀하던 시절이라 될 수 있는 대로 자투리가 남는 것을 최소화하며 책을 싸야했다. 책을 다 싸고 나면 앞장 겉면에 싸인펜을 이용해 큰 글씨로 학년, 반, 이름을 멋진 필체로 써주시면 그것으로 새 학기 준비는 끝이 났다.

요즘은 알록달록 예쁜 무늬가 새겨진 비닐 표지가 나오고 있어 사다가 끼우기만 하면 되니 아이들은 아버지께서 정성껏 책을 싸주시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연필 또한 연필 깍는 기계에 넣고 돌리기만 하면 예쁜 모양으로 깎아져 나온다. 그 시절에는 연필도 칼로 직접 깎아서 썼다. 내가 아직 여물지 못한 손으로 깍은 연필은 모양이 삐뚤빼뚤 예쁘지 않아 어머니께서는 손수 연필을 깎아 필통에 하나 가득 채워주시곤 했다.

그런 부모님을 바라보며 나도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내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편리해진 시대, 연필을 깎을 필요조차 없는 샤프연필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편리해진 시대에 살고 있지만 부족했던 그 시절이 자꾸만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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