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불과 문간방 청년
박영애
지금은 난방이 잘되는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내게도 지독한 가스냄새 맡으며 연탄 갈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갓난아기였을 때, 우리는 마당이 넓은 단독주택에 세 들어 살았다. 문 틈 사이로 찬바람이 훑는 계절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부엌 옆 한 귀퉁이에 연탄을 수백 장 쌓아 놓고 연탄불을 붙인 뒤 그 위에 연탄을 올려놓으면 어느새 아랫목이 뜨뜻해졌다. 그리고 불기운이 감도는 뜨뜻한 부뚜막에 걸터앉아 파를 다듬고, 밥이 뜸 들기를 기다렸다. 동네 새댁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다가도 갑자기 손뼉을 탁 치고 일어나 연탄불을 갈기 위해 집으로 헐레벌떡 달려가기 일쑤였다.
그때 우리 집 출입문과 마주한 문간방에 혼자 자취하는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고 집안일도 잘하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 청년이 기특해 청년이 출근하고 나면 연탄불을 갈아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 방에 연탄을 갈기 위해 아궁이 위에 있던 뜨거운 물이 가득 담긴 들통을 옮기려다가 공기 밸브를 툭 건드렸다. 순간 밸브가 ‘똑’ 부러지더니 순식간에 뜨거운 수증기가 안개기둥처럼 ‘쉭’ 소리를 내며 위로 솟구쳐 오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홱 돌렸다. 하마터면 등에 업은 갓난아이에게 화상을 입힐 뻔했던 것이다.
밸브가 부러져 뜨거운 공기가 다 빠져나간 방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 일만 저지른 꼴이 된 나는 보일러 수리공을 불렀다. 한참을 수리하고 있는데 청년이 집에 돌아왔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은 그는
“하마터면 아기가 다칠 뻔했네요.”
하며 자신이 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다행히 보일러는 바로 수리되었고 나는 미안한 마음에 청년의 만류를 뿌리치고 수리비의 절반인 오천 원을 부담했다.
이듬해 설날, 청년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우리에게 커피와 크림세트를 선물했다.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벌써 10여 년 전 일이다. 청년은 아마 지금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잘살고 있을 것이다.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부자로 살 수 있었던 따뜻한 겨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