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나라를 다녀왔지만 그래도 늘 동경해 왔던 유럽의 문화를 접하고 싶어 오랜기간 적금을 넣어 왔다. 만기가 가까워지자 몇 달째 계원들의 마음은 유럽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 중 한 친구는 여행사를 집 나들듯 하면서 가장 요긴한 코스를 물색해 열흘이 넘는 여행길에 나섰다. 여행은 떠나기 전 설렘이 더 황홀하다. 늘 어울려서 다닌 다불 8명, 싱글 3명의 계원들이 함께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새벽 5시가 모이는 시각이기에 밤잠을 설쳤다. 열흘 넘는 여행기간에 걸맞게 여행 가방이 기분만큼 불룩하다.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는 얼굴이 모두 환했다. 여행사 측에서 주선한 팀까지 합하니 차가 꽉 찼다.
입은 잠그고 지갑은 열어야 누구나 좋아한다는 60대들, 오늘은 든든한 지원자의 자랑이 차 안에 가득하다. 국제공항을 향해 새벽을 달리는 차는 시원하게 뚫어진 고속도로를 날듯 달렸다. 동행할 낯선 사람과도 열흘 동안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밟으면서부터 상대팀 한 부부에게 눈이 자주 갔다. 남편이 아내 곁에 붙어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아내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면서 뭐를 찾는가 하면, 옷매무시도 고쳐준다. 뭐라고 나무라니 눈만 둥그렇게 뜨고는 말이 없다. 보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어도 자꾸 눈이 그 부부를 향해 따라다닌다. 참 아내를 힘들게 한다는 맘이 들어 그 아내가 측은하고 불쌍해 보였다.
목적지인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부터는 외국이라 그런지 늘 손을 꼭 잡고 다녔다. 궁금하여 그쪽 일행에게 물어 보았다. 왜 저토록 꼼짝을 못하게 하느냐고 하였더니 한 교회에 다니는 친구인데 아내가 치매끼가 있어서 더 심하기 전에 평소 소원했던 유럽여행을 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뭉클해 졌다.
세월의 상처를 잊고 싶었을까? 60대에 치매가 왔다는 것이 너무 안스러워 일부러 가까이 하며 말을 걸어 보았다. " 무척 오고 싶었다. 지금 기분이 매우 좋다." 라고 멀쩡하게 말했다. 그러나 잠깐 사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남편과 일행은 혼비백산이 되어 함께 찾아다녀야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찾은 아내를 남편은 다시 손을 꼭 잡고 다니면서 여느 부부와 다르잖게 역사의 현장을 설명해 주었다. 내 머리가 복잡해 졌다. 왜 저런 병이 일찍 왔을까? 두 살 연하라서 그런지 남편은 아내보다 훨씬 젊고 인물도 훤하다. 어떤 연유로 만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으로 풍기는 외관은 여자가 아파서 그런지 좀 달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아내에게 지극정성을 다 하였다. 운동화 끈을 매어주기도 하고 약과 영양제 등을 수시로 챙겨 먹이기도 하였다. 가만히 앉아서 도움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니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어느 한곳에서는 아침 출발시각 십 분이 훨씬 지났는데 나타나질 않았다. 방을 나서는 순간 볼일이 보고 싶다고 해서 늦었다고 사과를 한다. 아무도 탓하질 않았다. 한평생을 저러고 살지는 아니했을 것 아닌가? 젊었을 때 아니 병이 오기 전까지 연상의 아내에게 마음 고생을 시켜서, 아니면 가족을 위해 너무 헌신적으로 열심히 살아온 아내에게 보답을 하는 의미인가?
한 생을 동행하는 부부의 모습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알고 싶지가 않다. 둘이서 하나임을 보여주는 부부애를 나는 지켜 보고 있다. 저 아내가 헨리 8세, 루이 14세, 라파엘, 다빈치, 미켈란젤로, 나폴레옹과 같은 역사적인 인물에 대하여 설명해 주면 기억이나 할까? 옛날의 아내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남편은 이 먼 곳까지 와서 에펠탑에 오르기도 하고, 베르사유궁전, 루브르 박물관, 대영박물관을 몰고 다니면서 젊은 날을 상기시켜준다. 맘속으로 구경을 시켜주려면 우리나라 경치 좋은 곳에 차를 몰고 쉬엄쉬엄 다니지 아픈 사람을 생고생을 시키나 싶었던 처음 생각이 지금은 남편 입장이 되어 이해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면세점에 들렀다. 남편은 비싼 샤넬 화장품을 한보따리 산다. 아내가 흥분한다. 결혼할 때 혼수품으로 받은 화장품이라면서 좋아한다. 샤넬 향수를 들고는 오랫동안 사용했다면서 함빡 웃는다. 그래 저 모습을 보기 위해 이 먼 곳을 데리고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만 원어치도 넘게 샀다고 말했다. 차에 오르는 남편도 환하게 웃는다.
누군가가 부부는 공기와 같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인데 함께 할 때는 모르고 산다고 한다. 떠났거나 그 구실을 못할 때 비로소 그 큰 자리가 소중했음을 느낀다고 했다. 나는 여행에서 소중한 것을 얻어왔다. 한평생을 동행하는 동반자의 자리가 어떤 것인지를, 보상의 심리든 참회의 심리든 아내를 지켜주려는 남편의 진지한 모습을 가슴에 담아온 여행이 더없이 값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