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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음


BY 박 소영 2007-03-11

어떤 부음
박소영


남편과의 다툼은 대개가 작은 일에서 일어난다. 큰일을 저질렀을 때는 오히려 용서가 되고 이해가 되건만 사소한 작은 일에는 서로 지지 않으려고 한다. 오늘 아침에도 운전을 못 하는 나는 남편에게 짐을 가지고 어디 갈 일이 있다면서 좀 태워 달라고 했다. 한마디로 택시 타고 가란다. 일없이 산으로 들로 잘도 다니더니만 마누라 볼일은 못 봐주나! 남편의 염장을 질렀다.

이런 와중에 전화가 온다. 그냥 두려니 계속 울려 받았다. 유난히 길었던 지난겨울 동안 꺼져가는 생명의 끝자락을 붙잡겠다고 한웅큼의 약을 억지로 삼키던 그녀가 편안한 곳으로 갔다는 부음이다. 사철 중 봄이 좋다는 소리를 자주했고 썩은 씨앗에서 새순이 돋으면 너는 나보다 낫다 너의 썩은 씨앗이 새순을 움트게 하니 푸념처럼 풀잎과 대화를 자주 나누었다.

소설 같은 삶을 살다 간 그녀, 꿈 많던 소녀시절도, 남편과 자식에 대한 뒷바라지를 한일도 그녀에게는 없었다. 한 남자를 만나 자식을 낳아 기르는 보통사람이 겪는 세상사를 단 한 순간이라도 살아봤으면 하던 그녀의 푸념엔 늘 한이 실려 있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언니댁에 얹혀살았던 어린시절, 형부 눈치와 매를 들지 않았어도 언니의 채찍은 매서웠다. 그 힘든 상황에서 고칠 수 없었던 온몸에 나타난 작은 망울들은 또래의 놀림감으로 충분했다. 가정부와 다름없는 생활, 부모의 덕으로 걱정 없이 학업에 열중하는 질녀와 조카들이 부러웠다.

나이가 들어 어머니와 독립해 나온 그녀는 생활 전선에 나서야 했다. 첫인상과는 달리 한번 보면 놓치지 않는 손재주와 정직과 부지런함을 인정받아 일하러 가는 곳마다 그녀의 능력은 높이 평가받았다. 어머니도 딸의 노력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어떤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하였고 노력한 만큼 돈이 모이는 재미에 세월의 흐름도 잊고 살았다.

“눈먼 자식이 효자 노릇 한다.”라는 옛날 말이 틀리지가 않았다. 모두가 자기생활에 바쁜 형제들은 막내인 그녀의 결혼에 어느 누구도 앞장서서 나서질 않았다. 외관상 흠도 문제이기도 했지만 어머니를 선뜻 모시고 가겠다는 형제는 없었다. 결혼을 포기하고 어머니와 평생을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그녀에게 접근한 한 남자가 있었다. 따뜻한 심성, 아름다운 목소리, 성실함이 그녀를 사랑한 동기라고 했다. 늦게 찾아온 사랑은 불륜이라는 멍에를 달고 있었다. 아내가 있는 남자를 사랑한다는 건 하느님 뜻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머리를 흔들 때는 그 남자는 더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결혼적령기를 놓친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었다. 사랑에 푹 빠져있는 새로운 세계는 남의 이목이 두렵지 않았다. 헤어지게 된다면 하는 불안한 맘이 앞섰다고나 할까. 사랑의 흔적이라도 남겨두고 싶어 원하던 임신을 했다. 사람들이 돌팔매질을 해도 한 생명을 잉태한 그녀는 행복했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본부인에게 다가가 자기의 진심을 털어놓으면서 함께 아기를 키우며 살자고 했을 때 거절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자로부터 버림받는 것보다 남편의 핏줄을 이어주려는 그녀와의 진심이 통했다.

임신을 눈치챘을 때 동생에게 무관심했던 형제들은 목사님을 부르고 어머니는 죽는다고 난리였다. 사십이 다 되어 찾아온 한 남자의 소중한 인연과 어머니와 피붙이들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선 그녀에게 “한 여자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라고 한 어머니의 절절한 애원을 거역하는 불 효녀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본부인이 와서 내가 허락하고 남편이 원하는 아기를 낳게 해 달라고 애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시기를 넘긴 아이의 낙태는 생명의 위험도 느꼈다. 더 아픈 가슴은 ‘엄마’라는 소중한 자리를 잃은 상심의 늪이다. 그 후 그녀는 누구에게도 쉽사리 정을 주지 않았고 자기만의 세계를 밧줄로 옭매었다.
하느님은 한 가지 복은 주셨는지 하는 일마다 잘 풀려 원하는 이상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장만한 아파트와 통장에 쌓여 가는 적립금은 그녀의 삶에 낙이 되어 주었다. 그녀의 알뜰함은 보는 이가 딱할 정도였다. 남들이 다 가지는 것을 가지지 못한 빈 곳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돈뿐이라는 생각은 흔들림이 없었다.
엄마가 교통사고로 가신 후 혼자 살면서 자신에게 너무도 소홀히 했다. 함께 먹을 사람이 없으니 바쁜 일과에 때를 거르는 일도 많았다. 억눌린 상처와 혹사한 몸은 병을 불러왔다.

그녀가 병원을 찾아갔을 땐 간암, 당뇨, 손을 쓸 수 없는 말기 암 환자가 되어 있었다. 오직 돈만이 나를 지켜주는 방패라고 생각한 그녀, 그 돈이 마지막엔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녀의 유산은 온갖 감언이설로 발 빠르게 접근한 자의 몫이 되었다. 가는 시간까지 그녀의 곁에서 돌봐준 시골서 온 언니의 진심을 그녀는 알아보지 못했다. '병심이 판단을 흐리게 했겠지 가는 사람에게 재산을 운운하는 비정한 언니는 되고 싶지 않다.'라는 양심이 바른 사람은 뒤로 물러앉았다. 서류상으로 이미 빈 털털이가 되어 마지막엔 국가의 도움을 받는 생활보호 대상자로 있다가 갔다.

그녀는 '돈은 버는 것보다 잘 쓸 수 있다는 게 더 어려운 것’이라는 좋은 교훈을 남기고 갔다. ‘남보다 훨씬 못한 피붙이들, 유산을 시키지 말고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 있었더라면 자식을 위해서도 몸을 다스려 죽지는 않았을 거다. 라며 그를 아는 친구들은 자기 일처럼 흥분한다. 태어나서 흔적 없이 가버린 그는 썩은 씨앗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자연의 순수한 이치를 그토록 따르고 싶었는데 그는 훌훌히 떠나갔다.

우리는 종종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산다. 공기와 물의 소중함을 모르 듯 가정이라는 소중함이 어떤 것인지를, 남편, 자식 자주 부딪치고 싸워야 하는 나의 가장 가까운 울타리의 사람들, 오늘도 나는 퇴직한 남편의 염장을 질렀다. 친구가 부러워했던 나의 삶을 나는 함부로 다루면서 살지는 않았나?
친구야! 잘 가거라. 너가 멀리 가면서 나를 눈뜨게 해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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