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복권
박 소 영
퇴근한 아들이 아라비아 숫자를 A4용지에 정성껏 쓰더니 가위로 낱낱이 잘라 네 겹으로 접어 윷놀이하듯이 훌쩍 던진다. 다섯 개를 골라 무엇인가 적기를 몇 번째, 아들 내외가 서로 던지려고 실랑이를 한다.
장난기가 서린 놀이로 보이기에 뭐 하느냐고 물었더니 “재미삼아 사온 복권에 적어 넣을 숫자를 골라잡기 위해 던집니다.”라고 하였다. 아들보다 지금껏 많은 숫자를 맞춘 며느리가 더 많이 던지겠다는 실랑이다.
나는 요행을 바라지 않기에 아직 한 번도 복권을 사 본 적이 없다. 이런 어미의 성미를 잘 아는 아들은 나한테 말도 않고 저들끼리 던져진 행운을 조심스레 주우면서 웃고 있는 중이다. 그러고는 며느리가 한 마디 한다. “어머님, 대박 터지면 아버님, 어머님 해외여행도 보내드리고 집도 늘려드리고 친정 부모님께도 넉넉하게 떼 드리고......”라고 하면서 인생역전의 꿈을 펼친다.
이런 꿈을 어디 내 아들 내외만 꾸는 것일까?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려고 하기보다는 한 번에 주어지는 요행을 좇아가는 모습이 서글퍼진다. 최근 몇 년 동안 불어 닥친 부동산 투기 붐이 열심히 일하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안겨준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정부정책에 불만을 쏟은 나다, 그런데 아들 내외는 복권으로 대박을 터뜨리려는 천만분의 일의 희망을 걸고 행복을 엮는다. 직장 다닐 때 젊은 사원이 복권을 사서 출근과 동시에 신문을 뚫어지게 보며 숫자 맞추기부터 먼저하고 일을 시작하는 걸 부질없는 짓이라고 나무라면 일주일동안 꿈을 안고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게 복권의 위력이라고 했다. 깨져서 서운함은 생각않는다던 그들 모습을 지금 아들내외가 하고있다.
대박에 꿈은 사회곳곳에서 도사리고 있다. 일하던 사람이 놀면 더욱 유혹한다. 사람을 많이 상대한 직업에 종사하다 나온 나의게 같이 퇴직한 동료가 놀러가자는 곳이 다단계 회사다. 능력이 있으면 박찬호가 부럽잖다는 깔끔한 젊은신사가 일대일의 교육은 귀가 솔깃하도록 무점포 소자본 사장이 되는길을 입금 통장을 보이면서 열심히 설명했다. 이제껏 돈벌어서 놀고 싶다고 했고 내가 늦도록 돈 벌면 남편이 작아보이고 자식들이 내 그늘에서 커지를 못한다는면 웃으면 거절했다. 5년이 지난 지금 그 동료는 얼마 후 그 곳에서 손을 뗐다는 얘기만 들었다. 이렇듯 허황한 꿈은 그저 꿈일 뿐이다. 생활은 현실이다. 신혼 때 계획이 일생의 밑거름이 된다.
가끔 잔소리인 줄 알면서도 저희에게 한 마디씩 한다. 알뜰하게 살아라고,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리지만 먹고 사는 것은 각자 노력에 달렸다는 알뜰교육을 시어미인 내가 본보기가 되어야 하기에 웬만한 옷은 비누로 손빨래 한다. 기저귀도 종이 기저귀를 쓰지 말고 천으로 된것을 폭폭 삶아서 쓰게 되면 아기 건강에도 좋고 환경오염도 덜 시킨다는 일석이조에 논리도 펴본다. 작은 것부터 아끼고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생활습관을 바라는 심정에서다
20여 년 한 곳에서 낡은 아파트에 사는 시어미의 경제관이 맘에 안 들기는 며느리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한다. 퇴직금을 은행에 넣어놓고 낮은 이자로 생활하는 시부모의 생활방식을 낡은 관념으로 받아들이는 눈치다. 섯불리 잘못했다간 능력없는 노후에 아이들의 짐이 될까봐 하는 노파심이 지금부터는 안정적인 생활방식이 최고라는 선입견이 그어떻한 논리에도 우리부부는 현혹되지 않는 초지일관으로 살고 있다. 언젠가 며느리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시부모가 50 평 분양받은 아파트가 배로 뛰었다는 말을 한적이 있다.
나는 어느 은행에 넣으면 조금이라도 이자가 나을까 수소문만 했지 이 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재태크 수단은 거들떠보지도 안 했다. 같이 퇴직한 직원이 퇴직금으로 땅에 투자해 삼배로 뛰어 팔았다는 소리를 듣고는 며느리에게 천 기저귀를 쓰라, 미래를 위해 열심히 저축을 해라는 잔소리가 씨알도 안 먹히는 세상이 맞구나 싶다.
그래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내 삶의 방식에 다가오는 며느리가 고맙기도 하다. 친구들이 적은 봉급인데도 다달이 시부모님께 일정액을 보내고 있다는 말도 한다. 가끔 내미는 봉투가 안쓰러워 무엇이라도 대체해 주려는 나의 마음을 알아 주는 며느리가 하는 말이 기특하기도 했다. 제 남편의 직장에서 오 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를 장만해 준 것을 무척 고맙게 생각할 줄도 안다.
친구 남편이 삼천만 원짜리 원룸에 살면서도 이천여 만 원짜리 차를 모는 실속없는 생활방식으로 사는 친구남편과 무엇이든지 아끼려는 남편의 알뜰함이 비교가 되는지 시어머니인 나에게 은근히 자랑하는 것이 사랑스럽다. 두 주일에 한 번씩 버스를 타고 세 식구가 찾아오는 게 고맙기도 하고 불편해 보여 안쓰럽기도 하다.
나는 아들내외에게 말해 주고 싶다. “얘들아! 돈 고민이 가장 행복한 고민이란다. 대궐 같은 집에 살면서도 웃음이 사라지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건강 지킨 가운데 의논 맞춰가며 알뜰하게 사는 게 너희들의 행복이고 또 부모에게도 효도하는 길이란다. 로또복권이 요행으로 추첨 되는 날은 너희의 행복이 하나씩 빠져나갈지도 모르는 일이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한 만큼 이루어진다는 평범한 사실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라. 열심히 사는 가운데 얻는 행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먼 훗날 너희는 알게 될 것이다. 행운보다는 행복을 쌓는 가정이 되기를 빌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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