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고향이다. 들녘에서 논갈이를 하든지 산 어귀에서 풀을 뜯던지 외양간에서 휴식을 취하든 그 어디서든지 소를 보면 평화롭고도 푸근하다. 나는 소와 함께 살아왔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겨울철 아랫목만큼이나 따뜻한 기억 속에 묻어 놓고 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예닐곱 살 먹은 아이의 손에 이끌려 다니며 풀을 뜯던 소는 농번기 때는 가장 장한 일꾼이었고 새끼를 낳게 되면 우리 삼남매의 학업에도 결정적인 힘이 되어 주었다. 소는 가축이 아닌 가족이라는 생각이 던다. 농사철이면 소는 이웃의 품앗이까지 다녀와 목덜미가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일을 한다. 소를 아끼시는 아버지께서는 저녁 식사 후 일에 지친 소에게 다가가 갈퀴로 긁어주기도하고 몸에 붙은 번데기나 쇠파리를 잡아주셨고 정성껏 죽을 쑤어 소의 영양에도 특별한 신경을 써셨다. 이러한 소가 얼마나 소중한 위치에 있는지를 보고 자랐다.
어느 이른 아침 아버지께서 소를 몰고 어디론가 가셨다. 어머니께 여쭈었더니 새끼를 낳기 위해 황소를 찾아갔다고 하시면서 사람과 같이 열 달 후면 새끼를 낳는다는 말씀도 덧붙여 주셨다. 새해가 되면 아버지께선 열두 달이 한 장으로 된 달력에 가족행사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 두신다. ‘내 딸이 중학교에 가더니 이런 것도 다 배웠구나.’ 하시며 칭찬을 해 주시리라 은근히 기대하면서 나는 가사 시간에 배운 대로 출산 예정일을 산출하여 달력에다 동그라미를 더 크고 선명하게 쳐두었다.
며칠 후 아버지께서“이 날은 무슨 날인데?"라며 물으셨습니다. 나는 자신 있게 "송아지 낳는 날입니다."라고 대답을 하자마자 “계집애가 못하는 소리가 없다, 공부시켜 놓으니 하는 말 하고는” 하시면서 역정을 내셨다. 그러고는 다른 달력에 가족행사를 다시 표기하시고는 내가 표시해 놓은 동그라미가 있는 달력은 찢어버리셨다. 평소에 꾸중을 잘 하시지 않던 아버지께서 왜 그러시는지 이유를 몰라 그만 울어버렸다.
가을걷이를 막 끝낼 때쯤에 들녘엔 무서리가 내려 뒷산 단풍도 마지막 치장을 다듬어 갈 때, 산에 풀어놓은 소가 날이 어두워져도 집에 오질 않았다. 들에 남아있는 배추밭이나 고구마 밭에 들어가 남의 집 일년 농사를 망쳐 놓치는 않았는지 온 가족이 근처 산과 들을 헤집다시피 했다.
생각하니 바로 그날이다. 오늘이 소가 새끼 낳는 날이다. 아버지께 직접 말씀을 못 드리고 어머니께 귀띔해 드렸다. 온 가족이 등불을 들고 산을 오르내리며 샅샅이 뒤지기 얼마 만에 소는 새끼를 낳으려고 산자락 풀 섶에 길게 누워 진통 중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얼른 집에 와서 풋콩과 보리쌀로 죽을 끓여 이고 소에게 갔다. 가는 도중 어머니의 밝은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제까지 무거운 몸으로 죽도록 일하고 농번기가 끝나니 새끼를 낳는 소에 대한 고마운 표정이 얼굴에 가득하셨다. 새끼를 낳아 귀한 목돈까지 소가 마련해 주니 어찌 대견하지 않겠으며 가족과 다르다고 할 수 있으랴.
소에게 죽을 먹이시는 아버지의 정성은 대단하셨다. 앓는 소에게 다가가 애썼다고 머리도 긁어주고 배도 문질러 주신다. 새끼가 막 나오려는 찰나 아버지께서 또 나를 보고 집에 먼저 내려가라고 하셨다. 가을 달이 밝다곤 하지만 어둑한 산길을 혼자 내려오기에는 너무도 무서웠고 아버지에 대한 야속한 맘이 앞섰던 그때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하다.
작년에 며느리가 임신 중임을 알려주었다. 예정일이 언제냐고 물으니 삼월 말 쯤 이라기에 좋은 때 낳게 되어 좋다고 하니까 출산 일을 조절했단다. 집안 어른과 손위 동서들에게는 그러한 말을 쉽게 하지 말라고 일러주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맞는데 시어머니는 왜 그러시느냐는 눈치다.
나는 요즈음의 젊은이에게는 내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때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늙은이에 불과할 뿐이다. 늦게나마 컴퓨터와 외국어를 배우면서 젊은이와 함께 같은 세상을 살아간다고 느끼고 있지만 세월이 엮어 준 사고의 한계는 ‘시어머니란 세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 품에 안긴 손녀의 옹알이하는 소리는 내 아들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세월이 준 흔들침대는 스위치만 누르면 아름다운 동요가 울려나건만 아기는 잠들지를 못하고 칭얼거릴 뿐이다. 할머니, 어머니, 나를 업고 흥얼거렸던 자장가를 그대로 되 읊어 본다. 자장자장,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꼬꼬 닭아 울지 마라 멍멍 개야 짖지 마라. 우리아기 잘도 잔다. 변하지 않는 자장가는 세월을 탓하지 않았고 등에 업힌 손녀는 어느 새 잠이 들어 있었다.
귀여운 손녀를 업고 있으니 그 옛날 송아지 낳던 날이 생각이 난다. 논둑과 밭둑,강변이나 산자락에서 유연히 풀뜯는 소를 볼 수 없게된지가 오래다. 모기장이 쳐있는 축사 안에서 바코드를 달고 편안하게 웃자란 소는 가족이 아닌 일정기간이 지나가면 팔려갈 가축일 뿐이다. 변화한 세태 속의 고향 소도 제 선조의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다. 호되게 꾸중 듣던 옛날 가족과 함께한 그때의 소가 고향처럼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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