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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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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룻밤만이라도


BY 사월향기 2007-05-26


 
 영어수업을 마친 후, 큰 딸이 학원을 나오면서 뜬금없이 "엄마, 우리 'Dream girls(드림걸즈)' 보러가요." 한다.
 워낙에 질펀하게 내 의중을 떠보는 딸애이기에 못 이기는 척 영화관에 따라 나섰다.
 영화, 뮤지컬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런 내 마음을 딸애가 읽었는 지도 모르겠다.
 결혼한 지 스무해가 지나도록 취향이 다른 남편과는 단 한 번도 영화 구경을 한 적이 없었기에, 대학생 딸과 함께 본 영화는 가슴깊이 자리한 소녀같은 내 감성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적절한 시기에 엄마맘을 잘 읽었네?" 씩 웃으며 딸애 옆구리를 찔렀다.
 러닝 타임 2시간이 넘는 영화치고 꽤 잘 만들어졌다고 느낌과 동시에, 배우들의 노랫소리는 순간마다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아침저녁으로 틈 날때마다 음악을 즐겨 듣는 나로선 그 영화 한 편만으로 온 몸에 하얀 포말같은 에너지가 생성되는 듯 했다.
 " 봐! 딱 엄마 스타일이지?"
 딸애가 능청스럽게 한 마디 던진다.
 흥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좌석에서 몸을 떼어야 했지만, 제니퍼와 비욘세의 "One night only(단 하룻밤만)"는 밤 늦도록 내 뇌리를 맴돌았다.
 결국 호기심을 못이기고 컴퓨터 앞에 앉아, 아이에게 음악파일을 다운받아달라 부탁해 놓고 일을 위해 쏜살같이 식당으로 줄행랑(?) 쳤다.
 저녁시간 맞춰 출근을 하지 않으면 쏟아질 남편의 시선이 따가워 칼같이 출근해야 했으므로.
 그러나 여느때처럼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일을 하면서도 낮에 본 영화의 잔상이 지워지지 않아 가슴이 설레었다.
 '이런~, 내가 무슨 이팔 청춘도 아니고...... 정신차리고 일이나 열심히 해야지."
 스스로 마음을 추스리며 또 하루를 마감한다.
 퇴근을 하니 딸애가 따끈할 때 드시라며 방금 구웠다는 드림걸즈 O.S.T CD를 건네준다.
 제니퍼 허드슨과 비욘세 놀즈의 발라드와 댄스곡의 비트를 수십 번이나 연달아 들으며 똑같은 곡에 대한 다른 성질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음악도 문학처럼 그와같이 하나의 곡으로서 여러개의 색깔을 낼 수 있다라는 걸 실감했다고나 할까.
 
 다음 날 아침에도 눈을 뜨자마자 CD를 틀었다.
느낌이 다른 두 가수의 노래를 틀어 놓고는 자고 있는 남편에게 속삭인다.
 "You want all my labor and my devotion(당신은 내게 노동과 헌신을 원해요)
  -중간생략-
  One night only, one night only(하룻밤만, 오직 하룻밤만)
  Go away baby big baby go away"(내곁을 떠나가 주오)
 남편은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만족스런 표정으로 실눈을 뜬다.
 사실은 love(사랑)대신에 labor(노동)로, come on(이리 와요)대신에 go away(떠나 줘요)로 개사한건데........
 조금은 미안한 얘기지만, 20대에서 40대가 되도록 영화한편 같이 안 봐준 남편에 대한 직격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야만 우회시켜 뜻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아마도 이십 여년을 넘게 결혼생활을 잘 꾸려 온 대한 민국 아줌마들의 마음이 나와 같지는 않을런지?
 단 하루만 남편이 내게 자유를 준다면, 단 하룻밤만 내게 꿈꿀 수 있는 시간을 준다면......하는 바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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