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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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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구 갑재(2)


BY 오수정 2009-05-12

내가 여자중학교를 졸업하자 우리도 그곳에서 이사를 했어요.

중학졸업즈음에 나는 갑재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는데

환경이 바뀌면서 마음이 교란되어 늘 우울하고

공부고 뭐고 손에 잡히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아주 가끔씩 그러니까 거리를 거닐다가 목발을 짚고 지나가는

장애인을 보면 문득 그 얘가 아련히 생각나다가

금방 연기사라지듯 하애지는 것이었어요.

 

내가 다른 곳으로 이사 한 곳에서 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위도식하고 있을때 나는 아주 몹쓸 현실 불만자가 되어있었는데

 

어느날 이었습니다.

정말 그날은 날씨도 오뉴월 햇빛에 바랜 국방색 러닝셔츠처럼

희뿌연 그런날이었어요.

무작정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갑재가 있는 고장으로 가고 있었어요.

 

정작 갈 곳이 그곳밖에 없었을 거예요.

버스는 유월의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미루나무 사이를 느릿하게 달리고 있었는데

나는 차창밖으로 불어오는 유월의 우유빛 같은 부드러운 바람에

혼곤히 젖어 아무런 상념없이 그렇게 몸을 맡기고 한참을 달렸습니다.

 

그 뜨거운 유월의 뙤약볕아래 그 얘와 나란히 도시의 넓은 아스팔트 길을

한없이 걸었던 기억.

 

갑재의 목발이 유난히 거슬리면서 잠시 짜증이 나기도 했었지요.

내가 그 아이 가방을 들어주었는데 그자식은 장애인 주제에

뭘 그렇게 잔뜩 넣어가지고 다니는지

무거워서 죽을 뻔 하였습니다.

 

녀석은 몸도 성치 않으면서 학교 운영부에서 중책을 맡기도 하고

뭐 봉사를 한답시고 이곳 저곳을 들 쑤시고 다니면서

또 그런곳에서 얻어지는 팬던트랄지 기념품등속을

빠짐없이 나에게 챙겨주곤 했더랬어요.

 

그러면서 아무런 불평없이 둘이서 오래도록 시내 중심가 까지 걷고 또 걷습니다.

 

오거리쯤에 도착할 무렵 유월의 긴해는 꼬리를 감추고

엷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어디에선가 저녁을 먹은것 같고

그리고 역전 근처 허름한 여인숙엘 같이 들어갔습니다.

 

정말 너무 피곤했었으니까요.

나는 여인숙 마루에 걸터앉아 죽을것 처럼 응석을 부리고

그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가는데 나는 갑재를 놓아주지 않았어요.

그냥 같이 있고 싶었어요.

 

황토색 페인트가 아무렇게나 칠해져 있는 방문을 열고

우리는 방안으로 들어가 나란히 누웠습니다.

격자무늬 천정을 아무말없이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며

열두시가 넘도록 그러고 있었습니다.

 

내가 더운것 같아 윗저고리를 벗고 하얀 런닝차림으로

누었더니 갑재는 조금 당황한듯이 오똑하니 일어나 앉습니다.

 

그는 새벽에 사라졌습니다.

내가 잠든사이 소리없이 내곁을 떠나 갔습니다.

 

나는 지금도 희뿌연 새벽길을 목발을 짚고 걸어가는

갑재의 뒷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목발 소리와 함께 그를 조금씩 떼어

허공에 뿌리면서 내자리로 돌아와 앉았습니다.

 

그렇게 병신인 그를 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