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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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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구 갑재(1)


BY 오수정 2009-05-12

 

갑재는 내 어릴적 친구입니다.

 

그얘네 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우리집 보다 훨씬 크고 색깔이 좀더 검고 비싸 보이는

기와로 지붕을 올렸으며 마루끝에는 커다란 유리문이 멋스럽게 붙어 있었어요.

 

얼굴이 마르고 하얀 그얘 아빠는 군소재지 교육감이었는데

늘 검은 양복을 입고 근엄해서 어린나는 키큰 소나무를 바라보는듯 했어요.

 

갑재는 근엄한 교육감의 막내 아들이었는데

그는 늘 두개의 목발을 어깨 겨드랑이에 끼고 나를 만나러

우리집을 오곤했어요.

어린 나는 그런 갑재가 안스럽거나 이상하게 보여지지 않았었죠.

여느 개구장이 처럼 갑재도 장난을 치거나 여자인 나를 못살게 구는 때도 이었으니까 말이죠.

숙제를 도와주기도 하고

맛난게 있으면 목발을 짚고 짚은 작은 손안에 힘겹게 쥐어 와서 나에게

먹이곤 했으니까요.

 

너른 벌판을 가로 질러 한참을 가야하는 학교는

그얘네 친척붙이 식모인  종숙이와 함께 했는데

그럴때면 나는 종숙이가 들고 있는 갑재의 가방을 나꿔채서

들판을 마구 내달리곤 했어요.

 

나에게 짖궂게 구는 갑재에게 골탕을 먹이기 위해서 말이지요.

갑재는 그럴때 마다 입을 함지박 만하게 벌리곤 웃었어요.

 

그얘는 하이얀 얼굴에 눈이 동그랬고 눈섶이 매우 짙었다니까요.

그리고 내 앞에서 늘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죠.

 

이런 갑재를 내 나이 오십팔세 그러니까 35년만에

만난것입니다.

 

내가 갑재와 마지막으로 헤어진것은 그러니까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즈음에

소나무 교육감이신 아버지가 정년퇴직과 동시에

가족들이 서울로 이사를 갔고

나는 그때까지도 그와 서신 왕래를 했으며

그 주소를 따라 금호동 그의 형이 개업한 약국까지 찾아간 이후였어요.

 

소나무처럼 근엄하기 짝이 없던 아버지는 약국에서 약간 떨어진 안집에

계셨는데 처녀가 된 나를 보시더니 갑재처럼 활짝웃으며 반가이 맞이해주더군요.

나는 그의 달라진 모습을 보며 그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어요.

근엄하신 아버지도 세월이 가면 그렇게 변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갑재도 나처럼 이성을 만나고 싶어할까?

결혼이라는걸 할 수 있을까?

아이도 낳을 수 있을까?

돌아오는 시내버스 안에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들을 주저리 주저리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는 마취되듯 생각이 희미해져 버립니다.

 

 

그렇게 갑재를 잊었드랬어요.

 

그동안 나도 성장을 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여느삶처럼 그랬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나는 문득 전철을 타고 가다가 '금호역'이라는

문자를 보고 갑재를 생각했습니다.

 

아...갑재

맞어. 금호동에서 본게 마지막이었지.

그 아인 지금 결혼했을까?

뭘하며 먹고 살까?

장애인인데 과연...

 

나는 갑자기 갑재가 불쌍해졌습니다.

눈물이 나도록 아니 사무치도록 그가 그립고 보고 싶었어요.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리움과 궁금증으로 몇날 몇일을

괴로워 해야만 했지요.

 

그 얘가 도대체 왜 그렇게 내 가슴속에서 꼬물거리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채 나는 인터넷을 이용하여 갑재를 찾기 시작했어요.

 

내가 읍내 여중학교를 마칠즈음 갑재는 더 큰 도시로

이사를 갔어요.

아버지가 전근을 가셨거든요.

그는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어요.

우리는 그 후 편지를 주고 받았죠.

갑재는 아주 정성스럽게 편지를 써서 이틀이 멀다하고 보내주었어요.

나도 이에 질세라 열심히 그에 답했죠.

 

우리의 사춘기는 그렇게 이어져 나갔지요.

지금 생각하면 나는 갑재를 이성으로 생각했고

그 얘도 그랬던것 같아요.

내가 그를 만나러 그가 사는 곳으로 가면 그는 내 손을 아프도록 꼬옥 쥐어주곤 했어요.

이상하게 그 얘의 목발이라든가 상체가 하체보다 커버린 모습에 대해서

그리 나쁘게 보여지지 않았다니까요.

그리고 그 얘의 짙고 큰 눈동자를 보면 내 마음도 조금 야릇하곤 했었어요.

아랫도리 바지가 목발에 의지해서 헐렁하게 보이는 그런 모습까지도

나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고 또 같이 거리를 걸어도

위축되거나 창피하지 않았어요.

 

갑재는 목발을 짚고 다녀도 늘 웃고 기운차게 살았어요.

질투날 정도로 매사에 적극적이며

학교생활도 열심이었죠.

두다리가 멀쩡한 나는 가난하여 사고 싶은것도 못사고

학비도 제때 못내어 선생님에게 늘 핀잔을 듣곤 했는데

나는 그럴때 마다 갑재에게 편지를 써서 위로를 받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