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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일기 6 / 대박


BY 그리운섬 2007-05-09

노점일기 6 / 대박



 글/김덕길


 사업을 하는 많은 사람들의 꿈은 다름 아닌 대박일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목표지만 누구나 또한 함부로 정복하기 힘든 사업에의 절정을 우리는 대박이라 칭한다.

 그럼 노점장사에서의 대박은 얼마일까? 내가 뻥튀기 장사를 시작한 이후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때가 성남 준보석 가게 앞에서 장사를 할 때 598000원이 제일 많은 매출이었다. 물론 그곳이야 내 가게 앞이었으니 더 안심하고 장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 때의 환상적인 상황과는 전혀 딴판이다. 이미 뻥튀기를 한참 먹던 그 시기도 아닐뿐더러 성남 시내 한복판처럼 사람들이 구름처럼 밀려다니는 곳은 알뜰장 어디에도 없다. 나는 이곳에서 대박을 매출 5십만 원이라고 내 나름대로 정해버렸다. 이 목표가 달성이 되면 우리 가족 모두 빠가 매운탕을 먹기로 결정했는데 아직 빠가매운탕을 먹지는 못했다. 그런데 비록 빠가매운탕은 못 먹었지만 오늘 나는 기어코 해내고야 말았다.


 2007년 2월 10일 토요일 흐리고 바람

 격주로 들어가는 영통 벽적골 아파트 알뜰 장은 그래도 장 중에서는 가장 매출이 뜨는 장이었기에 나는 서둘러 아침을 먹고 아파트 현관을 나섰다. 차 문을 열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며칠 전 배터리를 9만원이나 주고 교환했는데 배터리 이상이 아니면 발전기가 문제일 테니 카센터에 와서 손을 보라던 긴급출동 보험서비스 기사님의 말을 무시했던 게 화근이었다. 할 수 없이 그분이 남기고 갔던 명함을 보고 전화를 했더니 바로 달려와서 점프 선을 이용해 시동을 걸고 그 분이 운영하는 카센터에 가서 발전기를 교환했다. 12만원의 거금이 또 들어간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오늘 장사를 해서 대박을 내자! 그래서 이 돈을 만회해보자!’


 트럭은 어느새 한국 민속촌을 지나 경희대 캠퍼스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오늘은 허공이 무거워 보여

 하늘 저리도 내려앉으니

 혹여

 당신도 무거우신가

 벗으시게

 가슴 속 쌓인 혼돈의 파편들

 꽈르르 쏟아 버리시게

 

 이제 가볍지 않으신가?


 신호 대기 중 문득 떠오른 싯구절을 되새기며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을 가슴으로 밀어 올려 보았다. 꼼짝도 않는 하늘이지만 허공은 하늘을 단단하게 이고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차를 수리한다고 한 시간을 늦게 장에 도착했더니 이미 다른 분들이 내 자리의 반을 점령하고 있었다. 내 영역을 침범했다고 싸워봐야 돌아오는 것은 서로 찡그린 얼굴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오늘은 내가 늦게 온 죄로 모든 걸 체념하고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팀장한테 아무 이의 제기도 하지 않고 텐트를 칠 자리도 없어서 텐트도 치지 않고 바로 장사 준비를 시작하였다.

 의자를 깔고 깔판을 줄지어 도열시키고 접시뻥튀기 기계를 폼 나게 내려놓고 내 취향에 맞는 뻥튀기 상차림을 시작하였다. 상이 다 차려지고 트럭에는 “웰컴투 뻥”이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렸다. 다행인지 오늘 아침 텔레비전에서 또, 뻥튀기에 대한 방송이 나갔다고 손님들이 그러신다. (뻥튀기가 방송타면 며칠간은 장사가 잘되었습니다.)


 상차림 하니 갑자기 떠오르는 말이 있다. 지난겨울 영화제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모 여배우의 말 “그저 잘 차려진 밥상에 앉아 수저만 든 것뿐인데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영광입니다.” 그 후 수상소감을 말하라고 하면 이 말이 단골 메뉴가 되었단다. 이 유행어가 남의 일이 아닌 바로 내 일 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말이 바로 오늘 대박을 꿈꾸는 나의 각오일지도 모른다. ‘그저 잘 차려놓은 밥상에 손님들이 오셔서 밥만 먹고 간 것뿐인데 돈이 쌓여있더이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오늘 밤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예감은 적중했다. 내 옆에는 이불가게가 들어섰고 다른 편에는 호떡가게가 차려졌다. 호떡가게가 불이 나는 만큼 나의 가게는 더 불이 났다. 장을 펴자마자 울리기 시작한 접시뻥튀기 기계소리는 밤이 될 때까지 그칠 줄 몰랐다. 덩달아 튀겨지는 접시뻥튀기도 쌓였을 법 하지만  뻥튀기는 밤이 되도록 쌓일 줄 몰랐다.

 발전기 돌아가는 소음은 사람들을 들뜨게 만들었고 라디오에서 들리는 방송 소리는 왁자지껄한 시장판을 떠올렸고 군데군데 도열한 커다란 뻥튀기 자루는 물건을 구매하려는 고객들을 연상시켰으며 6초에 한 번씩 툭툭 소리를 내며 접시뻥튀기가 튀어나오면 사람들의 눈과 귀는 모두 이곳 뻥튀기 가게로 모여들었다. 그냥 지나치려는 분에게는 내가 다가서서 뻥튀기를 건넸다.

 

 오늘은 ‘손님과 눈 마주치기’란 목표를 설정했다.

 내가 물건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얼마나 손님과 정성스런 눈인사로 서로의 의사를 표시했었는가가 더 중요한 포인트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자 이거 한 장 드셔 보세요! 맛이 기가 막힙니다.”

 그냥 가려는 분에게는 간절히 드셔볼 것을 눈으로 이야기 했다. 그 분들은 나의 진정성이 담긴 눈인사에 미소로 답하며 뻥튀기 한 장을 받아주셨다. 그리고는 다시는 안볼 것처럼 지나치지만 분명 다섯 분 중 한 분은 장을 다 둘러본 후 마지막으로 다시 내 가게 앞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아까 뻥튀기 한 장 받아 먹었는데 너무 맛있네요. 먹고 그냥 가려니 미안해서 다시 왔어요. 주세요.”

 “한 봉지에 2천원인데 2봉지 사시면 3천원에 드립니다. 한 봉지 사시면 가시다 다시 돌아오십니다. 너무 맛있어서요. 하하하”

 “내 참, 아저씨 유혹에 못 이겨 어쩔 수가 없네요. 2봉지주세요 호호호”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내가 꿈꾸는 세상에 존재하고있는 내 이웃들은 이렇게 포근했다. 그분들은 이 아름다운 유혹에 충분한 미소로 답하셨고 덤으로 더 드리는 인정에 발걸음이 가벼우셨다.

 

 또 한분의 단골손님은 남성 흑인이셨다.

 항상 오면 뻥튀기의 기다란 봉지를 가리키며 “하프!” 이러셨다. 처음엔 깎아달란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2천 원짜리 뻥튀기를 반으로 나눠 1000원 어치만 달라는 소리였던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 흑인이 오셨다. 나는 먼저 인사를 건네고 소리쳤다.

 “하프?”

 “오케이 굿!”

 접시뻥 천 원어치를 건네며 아울러 몇 장 더 드시라고 건네는 나와 그분과의 오고가는 짧은 미소 속에서 이방인의 가슴에도 촉촉한 단비가 내렸을거라고 생각하니  나 역시 뿌듯했다. 


 또 한분은 늦은 밤중에 오신 여성분이셨다.

 “뻥튀기 이것 주세요!”

 “네, 손님 이것은 맛이 끝내줍니다. 보세요. 하루 종일 튀겼는데 겨우 4봉지 남았잖아요. 하하”

 “호호 사장님 인상이 좋으셔서 많이 사 가시나 봐요.”

 “에고 설마요. 맛이 좋으니까 사가시겠죠. 자 드셔 보세요. 어때요? 맛있죠?”

 "호호 정말 그러네요. 많이 파세요. 옷 더 입으셔야겠네요. 추워 보여요."

 

 뻐근한 어깨근육이  삼일 째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펴지지 않는 팔을 내밀어 담고 또 담기를 장장 9시간 호떡집 사장님도 이불집 사장님도 오셔서 저마다 한마디씩 하신다.

 “와! 무슨 손님들이 뻥튀기만 이렇게 사간데요? 어디 맛 좀 봐요!”

 “아. 다른 집 뻥튀기보다 부드럽네요?”

 나는 안다.

 사업은 맛이고 사업은 정성이며 사업은 부지런함이라고…….

 왜 저번 주에 안 오셨냐고 나무라시는 단골고객님의 정성에 나는 숙연해졌다. 나도 모를 어느곳에서 나를 기다려주시는 고객님도 계시는 구나. 혹, 내가 그분들에게 잘못한것은 없을까? 좋은 물건을 기분좋은 가격에 내 놓지 못하고 기분좋은 상품으로 포장하지 못한 잘못은 또 없었는지 반성해보는 날이다.

 

 집에 돌아와서 결산을 뽑아보니 자그마치 오늘 매출이 55만원이었다. 대박이다. 차 수리비 12만원을 빼도 오늘은 올해 들어 가장 큰 대박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빠가매운탕이 어른거리는데 차 수리한다고 돈을 써버려 차후 대박이 되는 날 쏘기로 다짐하고 오늘 일정을 마감했다.


 사업을 하다보면 이렇게 기쁜 날도 있다. 꼭, 돈이 벌려서 기쁘기 보다는 돈이 벌리니 만사가 다 여유가 되어 나오는 것이다.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모나리자에게 욕을 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오늘 돈보다 더 값진 미소를 나는 참 많이도 팔았고 또한 많이 샀다고 감히 자부하는 바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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