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아들로 태어나 총각이란 과정을 거친다.
이어 아저씨를 지나 할아버지로까지 진행한다.
여자 또한 딸로 탄생하여 아가씨란 여정을 지난다.
이어서 아줌마를 지나 할머니란 종착역에 닿게 된다.
근데 아주머니의 낮춤말인 ‘아줌마’는
언제부턴가 남녀를 불문하고 피하고 싶은 말이 되었지 싶다.
그렇다고 하여 아무 ‘아줌마’에게나 “아주머니”라고 부르기도 뭣하다.
요즘엔 아주머니인지 아님 아가씨인지
그 정체가 모호한, 정말이지 시쳇말로
쭉쭉빵빵한 미시들이 시글시글한 때문이다.
얼마 전 시내버스를 기다리는데 유치원생의
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기다리는 어떤 아주머니를 보게 되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영락없는 한 아이의 어머니였으되
차림새와 패션스타일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엄마, 왜 버스가 안 와?” 라는 곁의 아이만 없었더라면
그 아주머니는 ‘틀림없는’ 아가씨로만 보였다.
아무튼 지금도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아줌마’는
억척스러움과 수다스러움, 그리고 때론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스러움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사조가 없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는
“대한민국의 아줌마는 세계도 무서워 한다”고 했으리라.
하지만 그같은 폄훼와 조소는
아줌마의 본질을 모르고 하는 편견이자 사시(斜視)이다.
여자는 딸로 태어나 아가씨란 과정을 거쳐
어쩌면 인생의 황금기랄 수 있는 ‘아줌마 시대’에 정차하게 된다.
그렇지만 한국의 아줌마들은 그 때부터 더욱 본격적인
남편과 자식의 뒷바라지를 위한 자기희생을 불사하기 시작한다.
자녀를 위한 ‘강남엄마 따라잡기’ 식의 강행군은 기본이고
돈 못 버는 남편을 위하여는 억척스런 맞벌이도 대수가 아니다.
아무리 신산하고 고단하며 늘 그렇게 속이는
일상의 연속이되 남편의 따스한 말 한 마디와
자녀가 들고 오는 (학교 등지에서의) 상장만 있으면
아줌마들은 다시금 기운이 용솟음친다.
즉 아줌마는 이제 시내버스 혹은 지하철에서
자리가 났을 때 번개처럼 몸을 날려 무릎이 깨지건 말건
마구잡이로 그 자리를 쟁취만 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거다.
아줌마도 뚜렷한 철학이 있고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으며
가정경제를 지키기 위한 철저한 프로우먼의
절약정신으로까지 무장한 슈퍼우먼이라는 것이다.
경찰대 졸업식과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여성이 각각 수석 졸업의 영예를 안았다고 한다.
김은비(24) 경위와 이수연 소위(24)가 그 주인공이다.
헌데 이들은 자신이 수석 졸업생이 된 비결을 묻자
악착같은 한국의 ‘아줌마 정신’과 그 정신에서 기인한
성실함 때문인 것 같다고 하여 느끼는 바 적지 않았다.
기세등등한 아줌마는 가정의 힘이자
웃음의 근저이며 국가의 중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의기소침한 아줌마는 남편에게도 자녀에게도
미소는커녕 자칫 걱정거리의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음이다.
경찰대와 해사에서 여성이 모두 수석 졸업의
영예를 안았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서울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딸을 떠올렸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너도 헝그리, 아니 아줌마 정신으로
수석졸업의 영예를 안았으면 좋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