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본시 딸이 귀했다.
이렇게 서두를 꺼내고 보니 우리 집안이 대가족인 줄
착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싶어 밝히는데 그건 아니다.
가족 '구성원'이라고 모두 합쳐 봤자
우리집 네 식구와 숙부님 댁의 일곱 식구들 뿐이다.
아버님은 아들인 나 하나만을 보고 사시다가 너무도 일찍 이승을 버리셨다.
하여 생전의 선친 바람은
"아들만 있는 우리집에도 딸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나도 나이를 먹어 결혼을 했는데
첫 아이로 아들을 보았다. 아버님께선 독백처럼 말씀하셨다.
"딸이면 좋았을 것을...!"
혼자 사셨던 아버님께서는 폭음이 원인이 되어
아들이 불과 세 살이었을 적에 불쑥 타계하셨다.
버팀목의 상실이라는 처연함에 당초의 계획을 수정했다.
당시는 자녀를 하나만 낳고 단산하라는
정부의 가족계획 정책이 자못 '살벌'하던 즈음이었기에
나 역시도 아들 하나만으로 만족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님의 부재(不在)는 절대 고독의 경지에
들어서게 하는 단초가 되었기에
아내를 설득하여 둘째 아이를 갖기로 했다.
솔직히 철이 아직 덜 찬 고작(?)
나이 스물 네 살에 아버지가 된 나였다.
그런 때문으로 아들을 보았으되
'내가 과연 아버지 맞나?' 라는 자격지심이
든 것은 씻을 수 없는 상념이었다.
하지만 둘째 아이를 생산하는 즈음이 되자
나의 기대는 하늘에 두둥실 드는
애드벌룬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무어라 지을까?...
딸이면 더 좋겠는데 그렇다면...!
만감을 교차하며 남자와 여자의 이름을 미리 '찜' 해 놓았다.
이윽고 만삭의 몸이 된 아내는
하루가 다르게 출산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더욱 조바심이 난 나는
아내의 입맛에 맞는 간식 따위를 준비하느라 함께 동동거렸다.
둘째 아이의 출산을 며칠 앞둔 밤
꿈에 선친께서 나타나셨다.
근데 대갈일성을 하시는 게 아닌가.
"이놈아, 이번에도 또 아들이냐?"
화들짝 놀라 깼지만 꿈과는 달리 며칠 뒤
아내가 낳은 '소중한 보물'은 지금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다.
명석했던 딸은 초등학교부터 고교 때까지
전교 1위를 고수하다가 그예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일류대 학생이 되었다.
물론 아들도 그에 버금가지만 말이다.
요즘은 딸을 낳으면 딸 덕분에
그 부모는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까지 가는
시절인지라 아들보다 낫다던가.
아무튼 그런 건 차치하고라도 딸은 지금도
우리 집안에 웃음과 만족을
가득 안겨다주는 행복의 화수분이다.
선친의 꿈은 비록 반대였으되 현실에 있는
내 딸은 어쩌면 선친께서 일부러 그처럼
익살스런 '트릭'(trick)을 쓰시어
보내주신 보물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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