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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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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복(忠僕)


BY 휘발유 2006-11-08

 

어제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스산한 겨울을 재촉하는 비였기에

온종일 추웠음은 물론입니다.


그렇지만 퇴근하는 길은

뭔가를 기대하는 바가 있었기에

발걸음이 자못 낭창낭창하기까지 했습니다.


‘뭔가의 기대’, 그건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저희집의 어떤 충복(忠僕)과

다시금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어제 퇴근 전에

아내에게서 걸어온 전화가 그 요체였습니다.

“삼계탕 할 거니까 일찍 들어와요”.


집으로 들어서기 전에 수퍼에 들러

소주 두 병을 샀습니다.

이윽고 귀가를 했더니 저희집의 충복(忠僕)이

먼저 저를 반갑게 맞았지요.


“주인님! 오늘도 처. 자식을 먹여 살리고자

새벽부터 삶의 현장으로 나가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어서 제 곁에 와 앉으세요.”


‘오냐~ 기특한 녀석 같으니라고!’

주방에서 닭과 인삼 끓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자 금세 시장끼가 돌았습니다.


“아직 안 됐어?”

“얼추 다 됐는데 아직 아들이 안 왔으니

좀 더 기다리구려.”


충복이 떠안고 있던 펄펄 끓는 주전자의 물을 이용하여

샤워를 하니 하루의 피로가

말끔히 씻겨나가는 듯 했습니다.

이어 아들의 핸드폰을 두들겨

어서 귀가하길 종용했습니다.


충복의 곁으로 다가와 앉은 아내와

이런저런 얘길 나누고 있는데

이윽고 아들도 집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어서 와. 오늘 굉장히 추웠지?”


아들이 씻고 나왔기에 아내는 삼계탕과

소주를 상에 올려 충복의 곁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아들과 아내에게도 술을 따라주고

덩달아 기분 좋게 마셨습니다.


마침 삼계탕은 그 재료가 영계인 데다가

일전 폐막된 ‘금산 인삼 엑스포’에 가서

제가 직접 사 온 순수 토종 금산인삼이

하모니를 이뤘음에 그 맛이 더욱 탁월했습니다.


그렇게 삼계탕을 맛나게 먹고 났더니

아내는 주전자에 물과 인삼과 대추를 넣어

충복의 ‘머리’에 올렸습니다.

그걸 역시나 군말 없이 머리에 얹은 충복은

잠시 후에 향기마저 압권인

인삼 대추차로 바꿔 우리 가족의 건강차로서도 손색없는

일등 웰빙 음료를 서비스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린 그 충복을 둘러싸고 앉아

오늘 하루 각자의 세상 살았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면서 정담을 공유했습니다.


그 자리에 서울 가 있는 딸아이까지

있었더라면 동가홍상이었을 겁니다.

근데 딸은 다음 달 중순이나 돼야

겨울방학을 맞아 집에 올 수 있습니다.

그럼 그 때는 딸아이도 어제와 같은

우리 가족의 훈훈한 정담의 일원이 되겠지요.


술을 마신 데다가 충복이 제공하는

따뜻한 온기가 그예 잠을 쏟아지게 하는

단초로 작용했습니다.

“나 먼저 잘 테니까 이 놈(충복)에게도

‘밥’ 좀 먹인 뒤에 자도록 해.”


그리곤 침대에 가 누웠더니

금세 잠이 밀물로서 닥쳤습니다.

충복이 말했습니다.


“주인님~ 푹 주무세요,

그래야 내일도 열심히 생업에 열중하시죠.”

‘오냐, 고맙다!’


그같이 우직하고 성실한 저희집의

충복은 지난주에 들어온 녀석입니다.

근데 녀석이 평소 ‘먹는 거’라곤

고작 장 당 300원짜리 ‘음식’일 따름이며

그 것도 하루에 겨우 두 세 개면 충분합니다.


더군다나 녀석은 월급 내지는 상여금을 달라고

떼를 쓰고 농성을 하는 일도 없습니다.

아울러 늘 그렇게 함구하곤 말도 안 합니다.


그렇지만 녀석의 변함없는 주인에 대한

우직한 충성심은 예로부터도 유명하였지만

지금 역시도 그 심지(心志)가 오롯합니다.


그같이 든든하고 따뜻한 심성을 지닌

저희집의 충복 이름은 바로 연탄난로입니다.

올 겨울은 그 충복이 있기에

작년처럼 춥지는 않을 것입니다.


늘 그렇게 없이 사는 필부이기에

기름보일러나 가스보일러 내지는

전기히터와 같은 돈이 많이 드는

연료로의 겨울 난방은 언감생심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저희집의 가족 일원이기도 한

충직한 연탄난로가 미덥게

저희 가족의 추위를 벗겨주고 더불어

가족간의 대화 만발이란 물꼬까지 터주고 있음에

저는 거기에서 어떤 안빈낙도(安貧樂道)의 행복을 느낍니다.


오늘도 그 살가운 저희집의 충복을 만나고자

저녁엔 총총걸음으로 집에 돌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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