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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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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해로동혈 하시길


BY 휘발유 2006-10-15

사흘 전 은혼식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빈궁하여 매우 조촐하게 지내야했습니다.
어제는 호구지책의 일환으로 상금을 받을 요량에
대전시 중구청에서 주관하는 '제 4회 뿌리백일장'에 나갔습니다.

지난 1회 때 나가 장원을 받은 기량이 있었기에
너끈하게 글을 써내고 주변의 풍광을
구경한 뒤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서 종종 글을 올리고 있는
인터넷의 모 카페 커뮤니티에 들어가니
저의 은혼식과 관련한 글에 대하여
많은 분들이 축하의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순간 너무 고마워 와락 눈물이 나려 했습니다.
눈물이 많은 사람은 팔자도 기구하다고 했던가요.
하여 그렇게 제 인생은 굴곡이 심한
험산준령만을 점철해왔는가 싶습니다.

어젯밤엔 아내의 할아버지
제사가 있어 처가에 갔습니다.
1남 3녀의 처가인데 유일한 처남은
재작년에 그만 먼저 이승과의 인연을 끊으셨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장인 어르신도 건강이 매우 안 좋으신
때문으로 병원에 장기요양 중이시죠.

하여 간만에 처가에 가니 장모님의 수심이
바다와도 같이 깊으셨습니다.
손 위 동서 형님 내외가 오셨기에 함께 제사 준비를
하면서 형님께 농을 쳤습니다.
"처갓집은 이제 우리들 사위가 없으면 제사도 못 지내겠습니다..."

씁쓸히 화답으로서 웃는 형님과 제사를 올렸지요.
정종이 가득했으나 체질적으로 소주가 더 좋은
저는 조카를 시켜 소주를 두 병 사 오게 했습니다.
갈 길을 재촉하는 처형을 의식하여
아예 대접에 소주 두 병을 따라
벌컥벌컥 마시고 집에 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맹숭맹숭하여 지난 추석 즈음
선물로 받은 서천 한산 소곡주를 거듭 마시니
비로소 취기가 가득하였습니다.

사람은 칭찬을 거듭 받고
확인하고자 하는 어떤 습성이 있는가 봅니다.
술김에 제 은혼식을 축하해 주신
인터넷의 모 카페 커뮤니티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리곤 닉네임 '남도회관' 님께서 올려주신
축하의 화환(그림)과 '축하합니다!' 노래를 또 들었습니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수물수물 맺히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그깟 은혼식이 대수냐고 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풍진 세상을 지난 25년 간이나 살면서
아내는 그 숱한 나날을
'과연 이 빌어먹을 남편이랑 계속 살아야 하나?' 라는 고민과
자괴감의 성(城)을 켜켜이 쌓아왔음을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빈곤과 지출(목록)은 초대받지 않은
두 손님으로 찾아와 무시로, 지금도
괴롭히고 있는 원흉입니다.
대학생인 두 아이의 바라지만으로도
충분히, 그리고 솔직히 하루하루 살기가 힘듭니다.

때론 모든 걸 포기하고 이승을 버리고만 싶은
자학의 늪에 빠지기도 여반장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다시금 기운을 냅니다.
제겐 저만을 바라보는 가련한 아내와
어디 내놔도 자랑하고만 싶은
아이가 둘이나 있는 때문이지요.

남자는 쉬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금과옥조(?)도 이젠
통용되지 않는 시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비루한 허릅숭이인 저는
어찌 보면 현재의 재산 보유 여부가 그 사람의 인격마저
동격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이 시대의 철저한
자본주의 사관 때문으로 근근히 빈궁한 아웃사이더로서만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은혼식이란 게 어찌 아무나 하는 것이던가요.
할 수만 있다면 저는 정말이지 지난 은혼식 때
저 스스로라도 저 자신에게 훈장이라도 주고 싶었습니다.

두 집 건너 한 집 꼴로 이혼이
성행하는 즈음이라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 역시 그간 살면서
이혼이란 함정에 빠지긴 무시로
매일반이었음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봐서라도 참았습니다.
그것도 너무도 강렬하고 눅진하게! 

우리 부부의 이혼은 죄 없는 아이들에게
평생을 증오와 원망의 단초로 작용함을
저는 예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던 때문입니다.

삶은 저를 늘 그렇게 힘들게 하고 속였습니다.
하지만 저 혼자만이라도 시련을 참고 견딘다면
제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에는
어쨌거나 항상 격려과 신뢰의 따스한
난로가 켜져 있음을 천착했습니다.

주저리주저리 하다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이만 끝내야겠네요.

저의 은혼식을 더욱 장대하게 축하해 주신
'남도회관'님께 거듭 감사함을 표합니다.
그 분과는 아직 일면식도 없으되
어제 제 눈에서 그예 눈물까지 뽑게 했음에
예사롭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남도회관님'의 초청도 있었으니 만치
조만간 짬을 내어 '남도회관님'이
사신다는 여수에도 가고 싶습니다.

40년 지기들도 몰라 간과한 저의 '빛나는' 은혼식을 알아주시고
더불어 축하의 화환과 장중한 음악까지 덤으로
올려주신 '남도회관님'은 아마도 40년 지기에
필적하는 살가운 분이실 것 같습니다.

끝으로 역시나 남자는 평시에 울면 안 됩니다.
부모님과 배우자가 저나보다 먼저 가(시)는 경우라면 몰라도.

아무튼 어젯밤 제 눈에서 감사함의 눈물을 나게 한
남도회관 님과 그 외 적지 않으신 분들께도
심심한 감사를 올리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진부한 얘기겠으되 아무튼
지금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울지라도
역시나 조강지처 이상은 이 세상에 다시없음을
거듭 주창하고자 합니다.

저와 동(同) 시대를 사시는 남성 여러분들
모두 조강지처와 해로동혈(偕老同穴) 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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