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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혼식 날 단상


BY 휘발유 2006-10-13

             

어제는 정말로 뜻깊은 날이었다.
그건 바로 우리 부부의 결혼 25주년,
즉 은혼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작부터 나는 화려하진 않지만
어쨌든 나름대로의 이벤트를 준비했다.
우선 아내와 어디로든 여행을 떠난다.

해외로 간다면 동가홍상이겠으나
요즘 들어 더욱 부쩍 생활고에 시달리는
때문으로 그건 도무지 언감생심이었다.
그렇다면 어디가 좋을까?

그렇다.
KTX를 타고 서울로 가는 거다.
마침 우리의 은혼식인 10월 12일은
딸내미가 다니고 있는 서울대가
개교 60주년 기념식을 맞아 성대한
기념식을 한다고 했지 않았던가!

그래, 서울로 가는 거야.
그래서 자랑스런 딸의 대학도 구경하고
하룻밤을 녀석의 원룸에서 자면
별도의 숙박료도 들지 않을 터였다.
호텔 내지 여관의 숙박료에 상응하는 금액은
녀석에게 용돈으로 준다면 녀석의
입도 귀에 가서 걸릴 것이었다.

다음으론 금을 다만 대여섯 돈이라도 녹여서
아내의 목걸이를 해 주고 싶었다.
그럼 그렇지 않아도 미모가 빛을 발하는
아내의 목선은 그 얼마나 더욱 아름다울까!
끝으로는 아내에게 사상 최초일
가장 비싸고 근사한 외식을 시켜주는 거야...

그러나 이 세 가지의 바람, 아니
열망은 그예 도로아미타불이요
사상누각으로 바뀌고 말았으니
그래서 인간이란 불과 한 치 앞조차
내다보질 못 하는 우둔한 중생이라 했던가 보다.

위에 열거한 내 세 가지의 계획이
결국 수포로 돌아간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빈궁이 극점에 달한 때문이었다.

지난 6년 간 근무했던 직장이
불경기로 말미암아 업주가 폐업을 한 게
지난 7월 중순이었다.
그래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던 나는
퇴직금도 일원 한 푼 없이 나와서 한참을 방황해야 했다.

비정규직을 일컬어 이 사회의 2등 국민이라고까지
폄훼하는 혹자의 주장에 공감하면서
전에 다녔던 직장을 나오면서 괜스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마음을 닮은 우중충한 하늘색을 대하자
나도 모르게 그만 갑자기 더 쓸쓸하고
눈물이라도 펑펑 날 것 같아 혼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보다 더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왔거늘 ...
직장이야 다시 또 구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같은 백수로의 진입은
아내에게 해 주고자 했던 나의 모든 스케줄이
허물어지는 단초에 다름 아니었음에
나의 마음은 무척이나 괴로웠다.

그 뒤 겨우 직장을 구하긴 했으나
다시금 비정규직의 열악한 구조였기에
내 상심은 긴 강물처럼 한참이나 요동을 쳤다.

아무튼 그러한 나의 괴리를 아내가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백화점에 나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아내는 지난주부터 목소리에 더욱 힘을 가했으리라.

"우리 결혼기념일 날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말아요.
난 일을 해야하므로 당신이 어떤 스케줄을 짠다
해도 도저히 못 맞추니까 말예요."

어제 아침이 되자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두 분의 은혼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그리고
서울엔 몇 시에 도착하실 거예요?"
잠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지만
거짓말로 둘러대는 수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응, 오늘은 못 가겠다. 엄마도 일을 나가셨고
아빠도 바쁜 일이 있어서..."
실망의 기색이 역력한 딸을 다독여야 하는
무능한 이 아비의 마음은 칼바람에 베인
나목(裸木)에 다름 아니었음은 물론이었다.

저녁에 퇴근하면서 빈손으로 귀가하기엔
아내에게 중죄라도 짓는 것 같았기에
장미꽃 스무 다섯 송이를 샀다.
귀가하여 화병에 꽂고있는데 대학생 아들이
케이크를 하나 사 들고 왔다.

그러자 아들이 아니라 내 맘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살가운 친구와도 같아서 너무 고마웠다.
이윽고 아내가 퇴근하였기에 지인에게서 받은
금강산 장뇌삼 술도 상에 올리고
케이크의 촛불에 불을 붙였다.

이어 아들은 PC의 인터넷에서
박진영의 '청혼가'를 들려주어 분위기를
더욱 업그레이드시키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두 분의 은혼식을 이 아들이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아들의 칭찬에 우리 부부는 입을 맞춰 촛불을 껐다.
그리곤 금강산 장뇌삼 술은 독주라서 못 마신다기에
지난 어버이날에 딸이 사다줘서 마시다 남은
와인을 아내와 아들에게 따라주고 건배를 했다.

"여보~ 늘 그렇게 고생만 시켰음에도
안 달아나고 살아줘서 정말 고마워!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당신을 호강시켜 줄게. 사랑해!"

다시금 이유 모를 눈물이 스멀스멀 담쟁이 넝쿨처럼
내 온몸을 기어오르려 했지만
용감하게 뿌리치며 술을 들이켰다.

그 시간 딸이 또 다시 전화를 하여
축하에 힘을 실어줬음에 나는 어젯밤이
참으로 행복한 날이었다.

앞으로도 아내를 더욱 사랑하며
생업에도 박차를 기해 반드시 호시절로
반전시키리란 작심을 하며 아들이 찍어주는
디카의 플래시를 흔쾌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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