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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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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때까지는


BY 휘발유 2006-10-08

이제 오늘이면 길기도 한 추석연휴가 끝납니다.
요 몇 일간 술독에만 빠져 지냈더니
몸무게가 얼추 2 킬로그램 가량이나 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어서 직장으로 출근하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야만 하릴없이 술이나 마시는
한심한 행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저는 오는 10월 12일(목)이면 참으로
뜻깊은 날을 맞게 됩니다.
그건 바로 그 날이 저로서는 우리 부부의
결혼 25주년인 은혼식을 맞는 때문입니다.

신혼 시절이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아이들은 모두 스무살이 넘은 대학생이 되었고
저와 아내는 반백의 중늙은이가 되었네요.
그래서 세월처럼 빠른 건 다시없음을 새삼 천착하게 됩니다.

해마다 결혼기념일이 도래하면 저는 반드시
시내에서 장미꽃을 그 해에 맞는 숫자를
사다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즉 작년과 같은 경우는 결혼 24주년이었음에
장미꽃 스무 네 송이를 사는 식으로 말입니다.

올해의 은혼식 때는 진작부터
아내에게 다이아몬드는 못 할지언정
다만 금반지라도 선물로서 몇 돈 해 주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제가 경제적으로
너무도 빈궁한 격랑에 휩싸이게 되어
그마저도 실현 불가능해 보여
여간 답답하고 미안한 게 아닙니다.

그같이 제가 당면한 빈곤의 깊이가
더욱 바다와도 같아졌음은 두 달 전에
회사 사정으로 말미암아 폐업을 한 때문입니다.
그런 연유로서 실직을 하고 직장을
더욱 허술한 곳으로 이동한 때문이죠.

그래서 이번 추석연휴엔 고향으로 가는
차비의 마련조차도 허덕였기에
서울서 내려온 대학생 딸내미에게도 용돈조차 맘놓고
주질 못 하는 아픔과 만나야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는 늘 그렇게 가난에 찌들면서
어렵게 살아야 했지요.
그도 모자라 술을 마셨다 하면 으레 폭음으로
연결되는 저의 고질적인 주벽에도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함에도 달아나지 않고
지금껏 역시도 제 곁을 지켜주고 있는 아내이기에
참으로 고맙기 그지없는 것입니다.

여유가 된다면 우리 부부의 은혼식 때
다만 구리반지라도 하나 해 주고
가까운 대천바다로의 여행도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소박한 바람마저도 현재로선
연목구어(緣木求魚)임에 꿩 대신 닭이라고
대신에 저의 변함 없는 '아내사랑의 오롯함'이라는
선물을 여전히 아끼지 않고 펑펑 내 줄 작정입니다.

끝으로 이제는 아내가 아니라 차라리 친구와도
같은 제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 공간을 빌어
거듭 감사함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여보, 이제껏 고생만 시켜서 정말 미안하오!
하지만 기왕지사 고생한 거 조금만 더 참으시구려.
이제 2년 뒤면 우리 아이들이 모두 대학을 졸업하니
그 때가 되면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빈곤의 무게도 한층 가벼워질 게요.

그럼 그 때부터는 나도 당신과 여유자적하게
삼천리 금수강산을 유람도 하고
각종의 선물을 사서 그간의 당신 노고에 보답하리다.
다만 그 때까지는 무형의 선물인
'사랑'이란 것만 줄 터이니
굳이 이해해 주길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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