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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세 이상된 분들의 한지공예수업


BY 그린플라워 2012-11-02

한지공예 강사가 되고 나서 야외체험학습이나 일회성 수업은 더러 해 봤지만

여러명을 대상으로 하는 정기수업은 없었던 차에 드디어 강의요청이 들어왔다.

"구세군양로원에서 한지공예수업을 요청해 왔는데 하시겠어요?"

아무생각없이 하겠노라고 했다.

나름 10회분 강의안을 짜느라 궁리가 분분했었다.

며칠 뒤 또 연락이 왔다.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한지공예수업을 요청해 왔는데 하시겠어요?"

아무려면 양로원수업보다는 나을 듯 해서 그 수업도 하겠노라고 했다.

문제는 그 이후에 생겼다.

양로원에 계시는 분들이 85세 이상되신 분들이시란다.

눈 앞이 캄캄해졌다. 친정엄마보다 훨씬 연세가 많으신 분들을 상대로 뭔 수업이 진행되겠는가?

양로원수업은 도저히 못하겠다고 했더니 수강하시는 분들을 70세 이상으로 조정해 보겠노라고 했다.

그 말을 철썩같이 믿고 일단 수업용재료를 준비했다.

첫 강의는 다문화가정과 일반인들이 섞여 있는 열한명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었다.

무난하게 강의를 마치고 많이 행복해 하는 수강자들을 보니 그간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졌다.

다음날 양로원으로 수업을 하러 갔다.

여덟분이 들어오시는데 연세가 상당히 높아보였다. 할아버지도 한분 오셨다.

그 연세라 하면 수업을 못 받게 될까봐 거짓말을 한 건가보다.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어쨋든 수업은 해야 했다.

수전증이 있어서 못하겠다는 분과 한쪽 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오신 분까지 계셨다.

민화를 장식하는 다용도접시를 준비해 갔는데

설명을 하고 풀칠을 하기 시작하자 여덟분이 각양각색으로 사고를 치신다.

일일이 돌아가면서 다시 설명하고 시범도 보이면서 일단 수업이 끝났다.

어떤 할머니께서는

"이거 우리가 가져도 되는 거유?" 하셨다.

"그럼요. 만든 물건은 다 드리구요. 다음주에는 상자만들기 할 겁니다." 했더니

살림 늘겠다고 너무 좋아하셨다. 게다가 매주 오겠다고 했더니 더 좋다고들 하신다.

다른 강사들은 한달에 한번정도 봉사활동을 오는데 재밌는 한지공예를 매주 하시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으시겠는가. 처음에는 심드렁 하시던 분들이 가실 때에는 환하게 웃으시면서

몇번이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셨다.

수업하는데 애로사항은 좀 있었지만 수업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언젠가는 그 연세가 될 것이고 그래도 마음만은 청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어려운 숙제를 풀고난 후의 가뿐함으로 그 곳을 나왔다.

년말까지 매주 반가운 분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