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제26회 경기여성 기예경진대회가 있었다.
지난해 우리시에서는 올해 출전할 선수들을 뽑았는데 난 수필부문에 뽑혔었다.
당연히 수필부문으로 참가하게 될 줄 알았는데 지난해 회화부문 수상자가 없었다고
회화부문으로 출전하라고 통보가 왔다.
어젯밤에 잠이 안 왔다. 이년동안 유화로 돌아섰는데 유화도구를 챙겨가자니 거추장스럽고
수채화도구를 챙겨가자니 그림이 마음대로 그려질까 염려되고...
마음 비우고 참여하는데 의의를 두고 집결지로 갔다.
차에서 내려 그림을 그리려고 보니 화구가 든 배낭이 없는 게 아닌가?
승합차에 두고 내렸겠거니 하고 함께 간 시직원께 가져다 달라고 했더니 차에 없단다.
혹시나 싶어 나도 가봤는데 역시 없었다.
그때부터 눈앞이 캄캄해지고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그림이야 안 내면 그만이지만 수채화도구가 몽땅 든 배낭을 잃어버리면 낭패가 아닌가?
수소문 끝에 시청 로비에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
모였을 때 차타러 가면서 이젤과 화판만 챙기고 배낭은 거기 뒀던 모양이었다.
왕복 두시간여 걸리는 거리를 시청직원분께서 가셔서 배낭을 챙겨 오셨다.
연필조차 없어서 수필부문에 참여한 이에게 샤프펜슬을 빌려 종이에 밑그림을 그렸다.
배낭이 공수되고 물 뜨러 갈 시간도 아까워 마시라고 준 생수를 부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원래는 다른 구도를 염두에 두었었는데 그 구도로 완성하려면 시간이 너무 촉박할 듯해서 단순하게 그렸다.
그 와중에 방송사에서 그리는 모습을 촬영하겠단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리고 있었더니 잠깐 인터뷰를 하면 안되겠냐고 한다.
어차피 37명중 6명 뽑는 순위권 진입은 꿈도 못 꿀 판이라 인터뷰에 응했다.
그림을 제출하고 그제서야 화장실도 가고 나눠줬던 김밥을 먹었다.
한시간 뒤 발표가 임박해지자 회화부문 제출자들은 입상자를 제외하고 그림을 찾아가라고 했다.
부리나케 심사하는 곳으로 갔더니 내 그림이 없었다.
한켠에 몇개 없는 곳에 가 있길래 가지고 오려고 했더니 사진을 찍더니 그림 두고 가란다.
"으악~~~~~~~~!!"
총 143명 출전해서 부문별로 6명씩 총 24명 뽑는데 우리시는 네명가서 세 부문에 세명이 입상했다.
우리시가 서울의 구보다 적은 인구 7만도 안 되는 시라 이런 이변은 처음이란다.
오는 차안에서 배낭 가져다 주신 덕분이라고 했더니
물 떠다 준 분과 샤프펜슬 빌려준 분들이 자신들도 일조 했노라고 해서 웃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순위권 안에 들게 되면 한턱 쏘겠다고 했는데 시상식 때 쏠 예정이다.
오늘도 건망증이 대박 터트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