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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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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차라리 이민가고 만다-이사일기


BY 그린플라워 2008-08-14

6년 반동안 꼼짝도 않고 산 집에서 집장사가 집을 사 다세대주택을 짓게 되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남이 쓰다버린 물건이라도 쓸만한 게 있으면 좁은 집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집으로 가져다 쌓아두는 남편 덕에

남의 집 이사 대여섯번 하는 수고를 하고 말았다.

 

전업주부도 아니고 정리정돈의 귀재도 아닌 내가

밤잠 아껴가며 남편 몰래 수도 없이 버렸건만 오톤 탑차에 문닫기가 어려울 정도로 이삿짐이 실렸다.

가구, 냉장고, 전자렌지, 가스렌지까지 몽땅 새로 구입하여 이삿짐이 헐렁하리라 여겼다가 이삿짐업체나 우리 가족이나

다 어이가 없었다.

창고에 몇년씩 묵혀둔 짐까지 다 싸들고 온 결과다.

가구도 안 실린 차에 짐이 하도 많으니 동네 사람들이 다들 한마디씩 했나 보다.

"도데체 부부 중에 누가 안 버리나요?"

그 자리에 있던 애들아빠가

"애들엄마가 버리는 걸 싫어해서요."

옆집에 사는 친구가 그 광경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애들아빠 없는 자리에서

"저사람이 못버리게 해서 그런 거예요. 애들엄마가 몰래몰래 얼마나 버렸다구요."

그 친구가 오늘 내게 고자질 했다.

 

어제 이사짐을 내려 정리를 해주는데 끝이 없어 보여 이삿짐센터 사람들을 보냈다.

정리정돈의 귀재-구세주들(친정엄마, 두 여동생)이 등장했다.

그때부터 난 잔소리를 소방차 호스에서 나오는 물처럼 들어가며 정리정돈을 거들었다.

구세주들께 뒷일을 부탁하고 가게에 장사하러 도망을 가려다 더 혼나고 주저앉았다.

 

밤 열한시가 넘도록 두 여동생 차로 네차쯤 덜 필요한 물건을 버렸다.

그래도 아직도 반트럭은 버릴 게 남았다.

넓은 집으로 와도 소용이 없다.

동생들이 다음에 이사갈 때는 창고가 많은 집으로 가라고 했다.

난 되받아쳤다.

"아냐, 다음에 이사갈 일 생기면 그냥 이민가고 말래."

 

오늘 가게에서 돌아와 애들 아빠 옷장 정리를 했다.

애들아빠 없는 날 했어야 했는데 워낙 정리가 시급했으므로 버리는 일을 강행했다.

이사오기 전 안 입을 옷을 제발 버려달라고 신신당부 했건만

17년 전 결혼식날 입었던 턱시도까지 나왔다.

결혼 전에 입었던 옷들도 몇벌 나왔다.

반 이상 버리려고 정리하고 보니 미어터지려던 옷장이 헐렁해졌다.

그래도 아주 버리는 건 반대를 하길래 모조리 녹색가게에 팔기로 하고 정리를 한 것이다.

옷걸이와 옷 커버가 수십개가 쏟아져 나왔다.

 

이번 일요일에는 자주 입지 않은 내 옷까지 포함하여 집에서 오픈하우스(회원들끼리 돌아가며 아나바다장을 여는 것)를

열기로 하고 공지를 했다.

토요일까지 필요없는 온갖 세간살이를 다 정리하여 살림을 줄여볼 생각이다.

오래된 가구나 집기들이 기를 빼앗아가고 집으로 들어오려는 복까지 막는다는 설이 있다.

그 설을 떠나서 좀 가볍게 살아보고 싶다.

 

이참에 애들아빠까지 오픈하우스에 내 놓겠다고 하자 애들아빠가

"나 내 놓으면 서로 가져가려고 박 터질 게다."

"혹시 안 가져갈지도 모르니까 17년된 프라이드까지 끼워서 내놓을께."

 

다음 월요일부터 난 조금은 더 홀가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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