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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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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골곰국과 할머니


BY 그린플라워 2008-07-20

몇년 전 같은 매장에 있는 수입품가게 아주머니로부터 할머니 한분을 소개 받았다.

치아가 없으신데 건강이 좋지 않아 틀니도 못하시고 소화력이 떨어지셔서 약에 의존하고 사신단다.

우리 가게에는 한우사골을 냉장고에 넣어 두면 묵처럼 서리게 진국으로 고아 팔고 있었으므로

그 사골을 사러 오신 게다.

기력이 없으신 할머니께 사골을 두통씩 배달해 드렸더니 건강상태가 꽤 호전되셨다.

배달을 가면 사람이 그리우신 할머니께서 손수 차를 끓여주시거나 과일을 내오시곤 하시면서

이런저런 말씀이 끊어질 줄 모른다.

어떨 땐 급히 되돌아 오려고 신도 안 벗고 문간에서 물건을 드리면 선채로 다리가 아프도록 일장연설을 들어야만 했다.

그런 할머니를 위해 우리 늦둥이를 데리고 아예 작정하고 놀러 가면 반색을 하신다.

80 중반 연세에도 가정과를 나오셔서 가정선생님을 하셨고 배우자분은 대학총장도 하신 분이시다.

아들 둘 중 하나는 국내 손꼽히는 회사 사장이기도 하고, 며느리는 피아노전공자와 미술전공자라 하신다.

그럼 뭐하나...

기력도 없는 그 연세에 7평 아파트에 혼자 사시는 걸.

더 연로하시면 호화실버타운으로 옮겨가실 거란다.

가게가 휴일인 오늘 할머니를 위해 곰국을 끓여 가지 쪄서 무친것과 홍삼과자와 홍삼 달인 것 몇팩을 챙겨

할머니께 갔다. 더위사냥을 주시기에 먹으면서 할머니의 말벗이 되어 드리고 왔다.

실버타운 입주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걱정이시다.

할머니 재산만으로도 너끈할 일을 미리부터 걱정하고 계신다.

난 "그냥 시설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히 계세요." 했다.

사업에 실패하셔서 큰딸 외에는 학비도 못 대어주신 친정 부모님께서는 지금 어느 누구 부럽지 않게 자식들 도움 받으시면서

사시는데 그 할머니는 너무 외로우시다. 바쁜 며느리들을 구정 때 만나고 며칠 전에야 만나셨단다.

텅 비어 있는 냉장고 속이 너무 허전해 보인다. 할머니 마음도 그러리라.

돌아오는 길 - 창문너머 내 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지켜보셨을 할머니.

가슴이 짜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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