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것이 두렵다.
예전에 아빠가 그 여자를 파란지붕집으로 데려온 첫날부터 사람이 두렵기 시작했다.
처음엔 두려움이 아닌 미움, 단순히 싫은 감정이었는데 점점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던것 같다.
그 감정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물론, 지금은 나름대로 많이 극복한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사람을 만난다는건
내겐 두려움 그자체이다.
서영이는 병원에서 일주일을 버티다가 미진이 집으로 갔다.
한달만 둘은 동거를 시작한 것이다.
미진이는 속도 넓다.
같이 살아질지가 나는 의문이다.
하긴 미진이는 서영이와는 많이 달랐다.
물론 이성에 관한 개방적인 생각은 둘이 비슷했다.
좋으면 좋고, 나쁘면 나쁘고 하는식의 마음가는대로 너무 재거나 두드려보지 않는것........
그치만 결정적인것인
미진이는 그야말로 쿨한면이 있었지만
서영이는 우유부단 그자체였다.
모든 남자한테 그런것이 아니라는 점, 그것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이성에 관한것만큼 어려운건 없었다.
나는 두드려봐야되고 이것저것 재봐야되고 다짐을 여러차례 받아야만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다.
미진이와 서영이는 이런 내 행동들이 남자를 너무 많이 질리게 한다는것이다.
그래서 남자를 만날일이 있으면 둘은 꼭 나를 떼놓고 다녔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행동이 섭섭하다거나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나역시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미진이 한테서 전화가 왔다.
서영이와 함께 지내게 된 일을 위로해달라고....
미진이 집에서 저녁에 술을 한잔 하기로 했다.
미진이는 혼자 지낸지가 벌써 8년째다.
전문대학을 지방에서 다녔기때문에 자취는 어쩔수없는 시작이었다.
하지만 2년을 그렇게 자유롭게 생활하다보니 가족들과 한집에 있다는 것이 많이 불편하고
어색해서 다시 나오게 된것이다.
미진이의 말로는 자기는 주체할 수 없이 자유로운 영혼이라서 혼자 있어야만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미진이의 집에 가기전 파란지붕아래 마루끝에서 대문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있을 그여자가 생각났다.
잠깐동안 망설이다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신호음이 한참을 가더니 힘없고 가는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흘렀다.
"흠, 흠 ....저 오늘 많이 늦을거니까 기다리지 말고......먼저자요 .
....문단속잘하구요..... 흠 흠..."
괜한 헛기침이 자꾸 나왔다.
얼른 전화를 끊었다.
어색하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 심장뛰는소리가 너무 커서 옆사람에게 들릴것만 같았다.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 여자에게 늦는다고 전화하긴 오늘이 처음이었다.
미진이 집에 도착하자
둘은 저녁준비를 한다고 바쁘게 움직였다.
"너 이제 다 나은거냐?"
퉁명스럽게 서영이를 쳐다봤다.
"그래 이년아, 다 나았다니까 배아프냐?"
서영이도 퉁한 얼굴로 대꾸를 했다.
밥먹는 내내 나와 서영이는 단 네줄의 대사를 읊었다.
"넌 남자때문에 지겹지도 않냐?"
"니가 사랑을 해봤어야 알지!"
"야! 넌 그게 사랑이라서 맨날 죽는다고 난리냐?"
"넌 그런적도 없지?"
서로 못마땅하며 무시하는 마음들이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우린 서로 올바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게 틀림없다.
그러니까 서로를 비아냥거릴수 있는것이 아닐까
만약 서로가 정상적인 삶을 산다고 생각했다면
이해해주려는 마음이 더 많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진이가 건네주는 와인 한잔이 너무 떫고 너무 신맛이 강했다.
서영이도 그런지 나와 같이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는 서로가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서로가 하는 행동이
더 못마땅한것이었는지도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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