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추운 경첩은 예전에는 없었다고 사람들은 잔뜩 웅크리며 종종 걸음으로 바쁜듯 집으로 돌아갑니다
겨우내 봄날만 기다리던 개구리가 살며시 나오려다가 기절 하고 제 집으로 들어가 움츠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땅속으로는 따뜻한 봄기운이 스믈스믈 올라오고 잇겠지요
조금씩 약동 하려는 자연과는 달리 자꾸민 쇠약 해지는 시어머니 때문에 마음이 시립니다
2년전에 왼쪽눈 백내장 수술을 했는데 어제 는오른쪽 눈 수술을 하시고 지금은 큼지막한 안대를 하고 불편 한 거동을 하고 게십니다
일주일 전에 안과에 검사 하러 갔을때 일입니다
분홍색 가운을 걸친 간호사가 시력 검사를 한다고 하길래
울 어머니 글씨 모르는데 라고 목구멍 까지 기어 오르는 말을 하지 못한채 시력 검사를하게 되엇습니다
“할머니 여기 보세요 요게 무슨글자야”
간호사는 자기 할머니를 대하듯 친절하게 가느다란 스틱으로 여기 저기를 가르칩니다
“뭐라카노 난 몰라 ”
“할머니 이 글씨몰라”
“응 나 글씨 몰라”
“그럼 할머니 이건 뭐야”
간호사 는 조그맣고 새까만 나비를 가르칩니다
“아이고 그기 머꼬 모르겄어”
애가 타는 간호사는 쪼개진 동그라미를 가르치면서
‘할머니 요게 어느쪽으로 뚫어졌어“
“이쪽인가 아닌게빈데 저쪽인가”
어머니는 거칠어진 굵은 손마디로 방향을 가늠 할수 없어서 안타까워 하십니다
곁에서 보고 있던 환자들이 키킥대며 웃음을 참고 잇습니다
황당해진 나는 그제서야 어머니를 그냥 모시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귀도 잘 안들리시니 목소리는 커질수밖에 요 거기다가 경상도 사투리의 억양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웃음이 될수도 잇었겠지만 난 미처 대처하지 못한 내가 부끄러워서 얼굴이 홍당무가 되엇습니다
그렇습니다 까막눈
우리 어머님은 까막눈이 십니다
신혼초에 시골 장을 어머니랑 함께 가서 이것 저것 한 보따리 사서 집으로 돌아 오기 위해 시골 버스 정류장에 들렀는데
“아가야 네가 밝은 눈으로 찾아봐라 우리 버스가 어데 잇는지”
“예 어머니”
난젊은니까 밝은 눈이라고 하시는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울 어머니는 문맹이셨습니다
친정 엄마보다 약간의 연배신대 한자에 일본말 까지 조금씩 하는 친정 엄마랑은 사뭇 다르셔서 마음이 아프기 보다는 좀 어리 둥절 했습니다
가난이 전 재산인양 허덕이던 농촌 살림을 육 남매를 혼자서 키워 내신 시 어머니를 조금씩 이해 하는데는 오랜날들이 지나야 했습니다
혼자서 집안을 이끌어 가면서 사신 어머니는 많이 지쳤지만 지친 내색 하지 않고 가슴으로 눈물을 숨기며 사셨습니다
그시절은 왜그리 가난 해서 먹을것도 없었을까
625 전쟁때 인민군이 울 시댁 마을 까지 와서 소를 약탈 해서 잡아 먹고 아녀자들 한테 밥을 시키고 했다는 무서운 애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십니다
제가 시집 갔을떼 시댁에는 불을 지펴서 난방을 하고 밥을 짖고 그랬는데 남편이 출근 하고 나면 시어머니는 뒷산에서 나무를 한 짐씩 지개 가득 지고 내려 오십니다
나무에 파 묻혀서 머리에 쓴 하얀 수건만 보이기도 했습니다
난 집안에 서 아이랑 둘이서 잇는게 죄 스러워서 들에라도 따라 나설라치면 햇볕에 거슬린다 하시며 집안에서 아이나 잘 키우라고 하시며 언제나 혼자서 무겁고 외로운짐 지시던
어머님의 모습은 의연한 산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이 5살 무렵 우리가 임대 아파트를 장만 해서 이사하던날 붉은 팥고물이 먹음직한 찰떡을 한시루 쪄시면서 어머니는 눈물을 닦으셨습니다
난 해방된다는 느낌에 들떠 있었지만 어머니는 많이 서운해 하시면서도 의연하셨습니다
우리끼리 나와 살면서도 남편이랑 싸우면 쪼르르 어머니게 달려가 미주알 고주알 남편흉을
보면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그래도 우야노 니가 참아야제 아범도 철 들때 있겠지 이다 내가 전화해서 혼내주께
인자 집에가거라“
하시면서 바리 바리 푸성귀랑 맛난 것들을 싸주시면서 등을 밀어 냅니다
왜 그렇게 철부지 며누리 였을까 지금 생각 하면 죄 스럽고 부끄럽기만 합니다
친정 아버지가 돌아 가셨을때 식음을 전페한 며누리 아픔에 많이도 울어주셨던 어머니를 지금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오직 자식 사랑에 한평생 배진하신 어머니는 이제는 빈 둥지만 지키고 계시는 쓸쓸한 노인이 되어서 어쩌다 들리는 지식들만 빈 마당을 배회 하면서 기다리고 게십니다
세월이 흘러서 스산해진 노구를 이끌면서 말입니다
젊었을대 그렇게 고생을 하셨으면 노년이라도 편해야 할텐데 자식들은 부모님의 노고를 모른채 저 살아가기 바쁘고 지 자식입에 단 음식 물려주기에만 급급하고 부모님 고깃국한번
끓여 드릴 시간 없다고 이리저리 미꾸라지 빠지듯 합니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을 이승에서의 소풍 나들이에 조금만이라도 편한 휴식 할수 있도록
동행하는 며눌이 되고 싶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텅빈 시골집으로 돌아가게 되실 어머니를 위해서 오늘 저녁에는 맛난 밥상을 준비 하겠습니다
백내장 수술이 잘 되어서 이 봄에는 어머니랑 냉이도 캐고 뽀얀 쑥도 캐러 나가겠습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산천이 초록으로 물들고 이쁜 꽃들이 피어날 봄이 오고 있습니다
이 봄에는 행복한 고부지간이 되어 보겠습니다
늦었지만 기역 니은 하면서 어머니 까막눈 치료도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