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모내기도 끝이났다.
누렇던 들판은 파란 실타래가 나란히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다.
모내기가 끝이 났으니 장마가 오기전에 7마지기 양파 수확하는 일이 큰 걱정이다.
양파수확시기가 장마와 맞물려 수확하기까지 우리부부의 마음고생이다.
"재영아 아빠가 늦으시네 우리 아빠 마중나갈래?"
어른들 저녁을 드리고 아침 일찍 양파밭에 스프링쿨러로 물을 주려간 남편은 저녁 8시가 넘
었는데도 올 기미가 안보인다.
남편의 트럭소리가 나면 우리집 봄이와 백구가 주인이 온다고 반가운 울음을 우는데 얘네들
도 오지않는 주인을 기다리는지 모두 밖에 나와 문쪽만 바라보고 있다.
봄이와 우리와의 인연은 4년이 넘은 발바리과의 강아지로 얼마나 영리한지 주인에게 절대
복종이고 모르는 사람이 오면 죽어라고 짖어댄다.
백구는 아직 1년이 조금 넘은 진돗개로 얼마나 잘 먹는지 살이 포동포동 우리집 먹보이다.
주인의 발소리도 멀리서 알아듣고 반가움을 표한다.
남편은 들에 나가면 늦을때가 많아 일찍 우리들도 저녁을 먹은지라 아들이 과식을 한것같아
시골 들길을 걸으면서 아들과 이야기도 할겸 불러내니 서둘러 나온다.
양파밭은 차가 잘 들어가게 길이 포장이되어있어 그나마 밤길인데도 무섭지가않다.
포장이 되지않은 길은 밤에는 절대 다니지 못한다.(뱀이 무서워서)
단오가 지난 음력 오월의 여드레 밤하늘은 반달이 떠 있다.
밝지도 어둡지도않아 아들과 이런저런 학교 이야기와 아버지의 수고로움을 이야기하며 양파
밭에 닿으니 아직도 스프링쿨러가 돌아가고있다.
"아빠"
아들이 크게 불러보니 밭 한 가운데 있던 남편이 길가로 나온다.
"아직도 안끝났네...언제 끝나는데?"
하고 물으니 한 시간을 더 돌려야한다다.
"그럼 우리가 보고 있을테니 저녁 먹고 나오라고하니 조금만 더 돌리면되는데 같이 가자라며
남편은 스프링쿨러가 돌고있는 밭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쉴 새없이 경운기는 물을 퍼 올리고 그 물을 머금은 스프링쿨러는 양파밭에 목마름을 해결하여주고..
밭 한가운데 서 있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양파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의 목마름을 해결하여주고자 땡볕에서 하루종일 서 있는 저 주인아저씨의 수고로움
에 풍성한 수확으로 열매 맺어달라고..'
늦은 저녁이다보니 지나다니는 차도 사람들도 없다.
오직 우리 세 식구와 하늘의 몇 안되는 별들과 반달 뿐..
아들과 잘 포장된 시멘트 논길에서 어깨동무를하면서 옛날 어릴때 친구들과 어울리던 놀이
를 떠올리고 해보았다.
"재영아! 이렇게 어깨동무하고는 어깨동무 내 동무 다리가 절룩 함 해봐"
아들과 나는 그렇게 어깨동무를하고 반달이 비치는 논길에서 어깨동무 내동무 다리가 절룩
하면서 논길을 돌아 다녔다.
한참을 그렇게 다리를 절룩하느라고 다리가 아파 어깨동무 손을 내려 놓으니 울 아들이 부
른다.
"엄마..제가 춤 가르쳐 드릴께요 한 번 따라 해보세요"
"춤? 춤은 무슨 춤.." 하면서 머뭇거리니 아예 내 팔을 끌고는 춤을 가르쳐 줄 모양새다.
월드컵과 맞물려 꼭지점 댄스가 유행이라 지나가는 말로
"저거 재미 있겠다. 엄마도 한 번 해 보아야지" 하면서 집에서 할려니 쑥쓰러워 그냥 둔적이
있는데 아들은 그걸 생각해 낸 모양이다.
한 번도 나는 내 마음속의 즐거움을 춤으로 표현해 본적이 없다.
몸치인 관계로 마흔을 훌쩍 넘긴 이 나이까지 내 생각대로 몸을 흔들고 즐거워한적이 없는것이다.
남편도 내가 춤추는것 한 번 보는것이 소원이라고 할 정도이니 말해 무엇하랴.
우리 아이들도 엄마는 춤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말할 정도이니...
"그래 까짓껏 춤이 별거냐? 몸만 흔들면 되지않겠냐 ...하자" 라고 말문을 여니
우리 아들 신났다.
오필승코리아를 외치면서 춤을 추는데 나도 아들이 시키는대로 몸을 흔들었다.
그런데,
굳을대로 굳은 내 몸은 몸 따로 마음 따로 발과 손이 따로 놀고있다.
보다못한 아들은 "엄마 잘 보세요."
하면서 하나하나의 동작을 따로 가르쳐준다.
처음에는 다리만 흔들다가 그 다음에는 손까지.
그러다보니 조금 되는듯싶어 같이 해보니 조금 낫다.
오필승 코리아 맞춰 아들과 박명수의 쪼쪼댄스까지 섭렵하고(?) 아무것도없는 허공을 찔러도 보고 박수도 치고 아들과 나는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조명좋고(반달과 별빚) 선생좋고(아들이 세세히가르쳐주니)주목하는이없으니(부끄럼이 많음) '어째 나도 이런 면이 있었나' 하는 반문이 들 정도로 신나게 흔들었다.
시부모님을 모시는 긴장과 그리고 왜 내가 여기서 이고생을하고 사냐하는 내 마음속의 억울함도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된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 생각이나서 나는 미친듯이 아들과 춤을 추었다.
어느새 내 볼을 타고 땀과 함께 눈물이 흘렀다.
여자로서 아니 아이들의 엄마로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내 인생 앞에 그냥 서러워서..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 내 아픈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않고 살아 온 내 인생앞에서 그냥 서럽고 나도 엄마가 있는데 이 아픈 마음을 말하지도 못하고 이제는 딸이 아니라 엄마가 되어있는 내 자신이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남들이 말하는 우울증을 나 혼자 아프게 아프게 겪어 나가면서 흘린 눈물이 생각나 울었다.
그리고 내가 힘내서 살아갈 수있게 용기를 준 먼저 하늘나라로 간 오빠가 그리워서 울었다.
아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더욱 나는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이런 내 모습을 반달만이 희미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