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 봄비가 여름비 마냥 내린다.
봄비라하면 딸네집에 놀러와 너무 오래 머무른다 싶어
안사돈이 심술이 나 하는 말처럼 *사돈 가랑비가 내리네요* 한다는 그런 비가
내려야하는데 이건 숫제 바람과 함께 여름 소낙비를 연상케하는 거센 비가 내리친다.
하루 종일 창문도 열지 못하고 눅눅한 느낌이었는데 잠깐 비가 마실간 사이에 얼른 창문을 열어보니 앞산이 봄비에 산뜻하다.
공기도 한결 깨끗한 내음이다.
딱히 어디 갈데도 없는 나는 이렇게 비가 내리면 종일 방에서 뒹굴뒹굴..
그러다 심심하면 창문열고 앞산 뒷산을 멍청하게 보는게 유일한 낙이다.
비가 온 뒤의 앞산은 푸른 기운이 솟아 나려고 그런지 솔내음이 여기까지 묻어난다.
산을 중심으로 군데 군데 집들이 보이고 또 그 산 사이로 봉긋봉긋한 무덤들이 보인다.
며칠 간 황사 때문에 눈 둘곳이 마땅찮았는데 오늘은 너무 눈을 둘 곳이 많다.
이 생에 엮어사는 집들도 보이고 저 생의 집들인 무덤을 보면서 삶과 죽음의 길이
바로 내 앞에 놓여 있는것 같다.
저렇게 자연 속에서 그냥 편안하게 우리의 일상사를 내려다보는 저 무덤을 보면서
무엇을 위하여 태어나 무엇을 위하여 사는지..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지..
하루하루를 아둥바둥 사는게 싫다고 모두를 버리고 수녀원을 들어간 친구도 생각나고
부르는 이도 없을련만 이생을 먼저 간 오빠도 생각나고..
그리고 며칠 전 티브이에서 본 사제의 길을 가는 카톨릭대생들도 생각나고...
그리고 내 삶의 스승같은 법정스님도 생각나고...]
그리고 나도 그들처럼 살았다면...하는 생각도 해 보고..
비오는 날
하릴없이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