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살았던 고양이는 제대로 된 이름은 없지만 별명은 하나 있었다.
"알람"
알람이라고 붙인 이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달라고 벽이든 문이든 밥 줄때까지 마루에 올라와 창호문에
박치기를 한다. 처음엔 김일이라고 하려다가 그래도 역사에 길이 길이
남은 최초의 프로레슬러인데, 감히 고양이한테 이름을 줘서
부르기는 좀 민망해서 알람이라고 했었다.
아무리 봐도 저 폼나는 박치기는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레슬러 김일 선수랑 똑같다.
우리 가족은 그 팍팍 부딕히는 소리에 부시시 일어나고
우리가 일어나 주방쪽으로 가서 가스불을 키는 소리가 탁! 나면
그 때부터 니이야 옹~~~!!
밥 줄 때까지 남편의 머리맡에서 울어대면
견디다 못한 남편이 그제야 끄응 일어나더니
" 이 띠부랄넘아! 나도 아직 안먹은 밥을 너부터 달라고 지랄이여 ? 지랄이?"
우리가 부르는 별명은 시간 맞춰 팍팍 박치기하는 소리에 깨서 알람이라고 하지만
남편은 아직 더 자야 하는데 와서 밥 달라고 통사정하고 우는 소리에
띠부럴넘이 된 이 고양이가 갑자기 집 밖에는 절대 못 나가는 사건이 생겼다.
고양이 세계에도 각자의 영역이라는 세계가 분명히 있다.
아랫동네는 어떤 고양이가 판을 잡아 휘젓고 다니는 것은 몰라도
적어도 울 집에 사는 고양이 알람이가 동네 골목대장 노릇을 제대로 했나 본데,
자신들만의 영역은 기껏해야 남의 집 지붕에 홀짝 홀짝 가볍게 날아다니고.
어쩌다가 암컷이라도 만나면 데이트도 해야 하고
, 새끼들도 낳아 대대손손 대를 잇는 일도 해야하고
참 바쁜 생활을 하던 알람이가 어찌 된 일인지 밖에만 나가면
지 등치에 한 배는 넘게 크고 털이 개처럼 부슬부슬한 놈이
따라 들어와 서로 으르렁 대는 것을 보니 어디선가
더 쎈 고양이가 전입을 왔나 울 알람이는 영 기를 못 피고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꼬랑지를 세우고 다니더니
늘 땅밑으로 꼬리를 질질 끌고 다녔다.
남편이 이 고양이를 보고 붙인 이름을 부쳤다.
" 추노"
나 원 참 울 집 고양이는 기껏해야 띠부럴넘이라고 그것도 하루에 한 번만 부르나
시도 때도 없이 아무때나 부르는 이름을 붙여놓고
밥 한 번 주지 않은 남의 집 고양이 이름은 넘 멋지게 지어 놨다고 나도 한 소리를 했었다.
"근디 추노가 뜻이 뭐여?" 울 남편 뭐에 한 번 두둘겨 맞은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 으이그..하긴 니가 밤 9홉시 땡하면 드르렁 코를 냅다 골고 자는디 밤 열시에 하는 드라마를 알기나 허냐?"
그 당시엔 그래도 제빵왕 김탁구는 보긴 보는데 거긴엔 추노가 안 나온다.
내가 드라마 보다가 잠드는 것은 내 책임 전혀 아니고,
순전히 책도 연극도 영화도 재미없으면 꾸벅꾸벅 조는 것이니,
방송국에 추노가 언제 한 거냐고 묻기도 민망하고,
하여튼 딸이 오면 한 번 물어 봐야지 했었는데.
그 날 밤 한 밤중에 알람이가 우는 소리가 심상찮은 것이다.
고양이 목소리는 이야옹!~~, 아니면 니이야 옹~~ 혹은 리이링야 옹~~ 각각 용도가 틀린소리인데,
이번엔 으이이야응~~ 으르릉이야 옹~~.
자다가 우린 이게 뭔 소린인가 싶어 눈을 뜨고 창호문에 비친
달빛에 으스름히 비친 수상한 그림자가 딱 내 눈에 걸친거다.
"자기야 저게 뭐여? 개여? 고양이여?"
남편이 부시시 일어나 보더니
" 저거 추노다!"
뭐? 추노가 누군디? 고양이가 왜 추노인지 나도 참 갑갑하고
어찌된 일인지 우리집 고양이 알람이는 마룻밑에 쥐죽은 듯이 꼼짝않고 있으니
또 남편이 소리지르네.
" 야 !! 이 띠부럴넘아 그니께 왜 싸움에 져 갔고 맨날 쫒겨댕겨 ?'
그 때 그 순간 낮은 천장에서 부스럭 소리가 난다.
천장에서 몰래 죽은 듯이 사는 쥐 한 마리가 남편의 버럭 소리에 놀랐나 보다.
그러니 울 남편 또 그러네..
" 하기사 집에 있는 쥐 한마리도 못 잡는 놈이 못난 놈이 어디서 이기것어?"
그러니까 울 집 고양이 알람이가 고양이 세계에서 싸우는 영역싸움에서 확실히 진 것이고,
이긴 고양이는 대신 그 영역을 자리 차지하러 온 것 뿐이고,
집에서 사는 알람이는 절대 갈데 없는 신세가 되어 못 나가고 잇는 상황이 되었는데,
이게 장기전이 된 것이다.
그 추노 고양이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밤이면 밤마다 와서
문 밖에 앉아 불침번처럼 일인 시위를 하니 주인인 나도 이걸 참 어떡할까 참 큰 고민이었다.
남편에게 그랬다.
저걸 좀 어떡해 해봐? 온 동네가 시끄럽당께? 했더니
남편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숨만 푹푹 쉰다.
얼마전에 진도개 복순이가 뒷집 토끼 물어 죽여 소동을 치루더니,
이젠 고양이 차례냐고 자식 많은 집 바람잘 날 없다는 말 딱 맞는 거다.
고기 좀 많이 좀 먹여서 어떻게 다시 재결투를 해보라고 할까? 했더니
" 으이그 지금 어디 저 놈이 고양이 권투선수 결승 내보내냐? " 남편이 또 나를 쬐려본다.
왜 나만보면 쬐려보냐? 할 수도 없었다.
이 고양이 때문에 우리가족은 밤이면 밤마다 결전을 치루는 알람을 보니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전쟁을 치루는 것인지,
고양이로서 사는 것도 엄청난 곤경과 고난이 따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은 먼 추억같은 애깃거리가 되었지만
어쩌다가 지금은 아파트에 살다보니 그 동안 살았던 작은 하루들이 꿈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