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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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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별 일이 참 많이 생긴다


BY 천정자 2014-03-23

 

한 십 년 전 일이다.

지금도 삼월인데 그러고 보니 삼월에 눈이 와서 난리가 났었다.

한 해 농사 짓는 거 한 참 준비하다가 도로 겨울로 가게 생겼다고 죽는 소리도 분분하게 떠돌아 나의 건망증에도 그 일은 절대 못 잊는 사건이 있었다.

 

한 동네애서 나의 느린 걸음으로 한 십분 걸어가야 하는 한적하고 외진 곳에 살았던 애기 엄마였던 그 새댁이 맨발로 우리집 마당으로 어둠이 아직 걷히지 않은 새벽에 도망쳐 와서 긴급구조를 요청하였다. 그 뒤로 그 새댁 남편이 신발도 안 벗고 도둑놈 처럼 주방이며 안방을 휘젖고 다니는데 이건 정말 육이오때 난리는 못봐서 잘 모르겠고, 남의 집 부부 싸움을 하는데 왜 우리집이 전쟁터가 되어 애들하고 나는 순식간에 정신이 홀라당 탈출 한 것처럼 되었다. 요즘 말 그대로 멘탈붕괴라면 딱 맞을 듯 싶다. 그 때 남편이 그 새댁 남편을 끌고 나가 당장 나가라고 난리치고 아이들 방에 숨어 있던 새댁을 전혀 모른다고 왜 여기서 찾냐고 호통을 치니까 그제야 나는 정신이 들어 또 핸드폰을 찾았다.

" 저기 지금 내가 당장 주거 침입죄로 신고를 할테니 거기 꼼짝말고 서 있어요?" 했더니

숨이 벅찬지 헐떡거리면서 마당을 벗어나는 것을 보고 난 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 우리집에 일어난 건지 한동안 침묵에 싸였다. 아무리 경우 모르고 무식하다 해도 그렇지 남의 집에 도둑놈 잡으러 와도 자초지종을 애기하고 들어와도 문 열어줄까 말까인데, 그러고 보니 우리집 대문이 고장나서 노상 열려 있었던 것이 이리저리 도망다니다 문 열린 우리집을 쫒겨 들어온 새댁을 위해서 고장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애길 들어보니 남편이 잦은 구타에 폭행에 시달리다 몇 번 입원을 한 그 새댁애기를 듣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무슨 정의의 사도도 아닌데 이른 새벽에 우리집에 온 그 새댁하고 부리나케 아침을 먹고 일찍감치 지금의 쉼터라고 해야 되나 제목은 잘 기억이 안나는데 같이 그 곳을 찾아갔다. 겁에 질린 그 새댁 대신에 나는 흥분이 다 가라앉지 못해 이런 저런 상황을 애길 했더니 병원에 가서 치료 받은 기록하고 진단서를 발급해오란다.그러고 보니 남편한테 매맞느라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채 맨발로 나왔는데, 신분증이나 돈도 없는데 어디가서 치료를 받냐고 하니 그런 것은 자기 담당이 아니라고 매뉴얼대로 안내를 해주는 것이라 설명하는데 참 구차하게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마 그 때가 가정폭력 상담실이 생긴지 얼마 안되어서 그랬던가 같이 간 나보다 더 어설픈 상담사 얼굴을 보고 기도 안찼다. 내 차에 태워 그 길로 곧장 파출소로 갔다. 거두절미하고 자초지종을 설명 하고 난 뒤 새댁의 남편을 폭력으로 고소하려고 왔다고 하니까 말로 하는 진술도 필요하지만, 우선 병원가서 진단을 받아야 한다나. 그래서 옆에 있는 병원에 가서 진료접수를 하는데 그제야 정신이 들었나 새댁이 그런다.

"저기요 언니 제가 작년에 여기서 치료 받은 적이 있어요 이제 기억이 나요..."

당장 치료차트며 진단서를 발급받아 일사천리로 고소장을 접수시켰다.

그렇게 이 틀이 지났나 새댁한테 나에게 전화가 왔다.

" 언니 남편이 합의 하자고 하는데 어떻게 해요?"

남편이 새댁의 친정에 쪼르르 찾아와 다시는 그런 일을 안하겠다고 장모님 앞에서 무릎을 끓고 사죄를 했단다. 장모님 앞에서 몇 번이라도 사죄만 하면 그만이지만, 같이 사는 것은 새댁이니 거기에 속지 말라고 그건 그거고 얼른 병원가서 드러 누워 있으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대답을 했는데, 그 후로 소식이 함흥차사다. 일처리는 내가 했는데 몇 달 후에 그 새댁은 이사 가버렸다고 해서 어떻게 일이 잘 되었나보다 하고 생각 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몇 년이 흘렀나 본데, 친구들 모임으로 갈비집에 모여 앉아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여자가 물하고 컵을 들고 오는데 건망증 심한 나나 그 새댁이 눈이 딱 마주치면서

오다가 도로 가버리는 것이다. 물은 주고 가야지 왜 그냥 가냐고 같이 온 동행한 한 친구가 부르자 마지 못해 물하고 컵만 놓고 가는데 그제야 생각이 퍼뜩 난다.

" 아! 그 애기엄마다!"

진짜 죄짓고 못 산다고 하더니 웬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했지만, 그 새댁은 죄인처럼 나한테 절절 맬 정도로 잘못한 것은 아닌데 손님으로 온 우리한테 서빙하러 나오지도 않는 것이다. 다른 아줌마가 대신 서빙을 하는동안 나는 내내 그 새댁에 생각이 쏠렸다. 나중에 계산을 하는데 주인인듯한 분에게 그 애기엄마 여기서 일하냐고 하니 대답이 알바를 한단다. 아! 그렇구나 하고 나오고 난 후 나는 그 일을 까마득히 잊어 버렸다.

 

또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난 후 몇 칠 전에 머리가 길어 정리를 하고 파마를 하러 단골미용실에 갔다. 단골 미용실도 이젠 역사가 길다. 한 이십 년 넘었는데, 미용실 원장이나 나나 나이도 비슷하고 아들들 나이도 비슷해서 이젠 단골손님으로서 그냥 한동네 사촌으로 지내는 이웃사촌처럼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굳이 말을 해서 따로 주문을 안해도 내 머리만 맡겨 놓으면 알아서 척척 해주는 곳이기도 하는데, 새로 온 미용사라며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그 애기엄마랑 비슷하게 생긴 거였다. 내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아직 그 젊은 엄마의 기억엔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는 것이다.

" 아니 언니 어쩜 그대로예요? 세상에 여기서 만나네요?"

그러니까 나는 미용실 손님이고, 그 애기엄마는 미용사로 만나는 것을 짐작도 못 할 일인데

그제야 그 때 고소하고 난 후 어떻게 된 거냐고 물을 수 있었다. 대답을 하는데 그 때 그 일 때문에 남편이 때리지는 않았는데 도박에 술을 날마다 마시다가 술집에서 만난 어떤 여자랑 바람을 폈단다. 그것도 연상의 여자인데 자기도 잘아는 여자란다. 아이가 둘이었는데 애들이 많이 컸을텐데 했더니 이젠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고 둘 다 공부를 참 잘한단다. 그래 지금은 남편과 어떻게 사냐고 물으니까, 그 때 식당에서 만났을 때 남편과 이혼 숙려 기간이었단다. 알고보니 남편이 한 열 살 더 많았다. 그러고 보니 그런 남편이 연상의 여자랑 바람피면 도대체 몇 살 더 먹은 늙은 여자인가 숫자 감각 둔한 내 머릿 속이 더 엉켜 버렸다. 그 때 언니 말이 맞았어요. 사죄 백 번 했다고 달라진 상황은 전혀 없었고 그 때 그 이후로 매 번 때린 적은 없지만 속을 엄청 썩일 때마다 당했는데도 연락을 못 했단다. 언니 말대로 딱 부러지게 일처리를 했었으면 이혼도 안 할 수 있었을 것인데,그 때 언니가 해 준 말이 어쩜 맞아 떨어지는지 진짜 보고 싶었단다.뭣도 모르고 마음만 약해서 합의 해주고 질질 끌려다니고 애들한테 피해 갈까봐 노심초사 전전긍긍한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단다. 그렇게 마음 단단히 먹고 내 일을 찾아야 겠다 결심하니까 미용사 자격증도 따게 되고 취직도 하고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보니 그렇게 어려웠던 그 세월을 술 술 남의 애기 하듯이 쉽게 애기한다. 남편은 어디서 사냐고 물으니까 바람 난 여자랑 한 일 년 살았는데 알고보니 그 여자가 꽃 뱀이고 사기를 칠려고 일부러 남편의 명의로 대출 받고 먹튀했단다. 얼마 전에 애들한테 전화가 왔는데 니 엄마한테 잘하라는 둥 아빠가 미안하다는 등 뭐 그런 전화가 왔단다. 그래서 아들이 그랬단다. 아빠도 잘 지내셔요..

 

전화번호도 알려 줄 필요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단다. 이미 가족관계증염서에서 빠진 가족 아닌 가족일 뿐, 더 이상 더 이하도 아니란다. 그 애길 내 머리 파마하면서 들으니 나도 이거 참 기분이 묘하다. 평생 같이 살아 간다는 것이 새삼 귀중하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 집에 맨 발로 쫒겨 들어 왔던 어리버리했던 그 새댁이 이젠 홀로 단단하게 내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십 년전에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싶다.

 

미용실 원장이 커피를 타온다.

" 아니 원래 아는 사이여?" 묻는데

우린 거울보고 빙그레 웃으며 대답을 했다.

" 응 한 동네에서 같이 살았지!"

언니라는데 이제 부터 내 여동생하자고 하니까 대답이 좋단다.

든든한 언니 덕분에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파마 값도 자신이 내 준단다.

그 때 그 고소장 써 준 값이란다. 그럼 내가 팁을 줘야지 그 동안 열심히 살았으니께!

 

진짜 사람으로 사는 것 오래 살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