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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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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이그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BY 천정자 2013-05-24

내 친구 결혼 기념일 날 집에서 만두 쪄먹은 애길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 때 애기가 벌써 십 년이나 지났다.

그 친구는 기대가 잔뜩 부풀어 잘 안하던 진주 귀걸이에 기념일에 입고 갈려고 미리 골라 놓은 원피스도 입었고, 근사한 레스토랑에 예약도 해놓고 남편과 같이 외출만 하면 곧장 가면 되는데, 지하 주차장까지 가서 차에 키를 꽂고 시동을 걸었더니 영 안 걸리더란다. 고장이냐 뭐냐 서로  실랑이하다가 남편이 차에서 내려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방전이란다. 전 날 안개가 심해서 운전하고 미등을 꺼놓지 않았던 것을 기억이 나니 내 친구 어이 없어 서로 기가막힌 얼굴하고 그냥 다시 엘리베이터 타고 집으로 돌아 올 때 남편에게 그랬단다.

" 자기야 이게 몇 번째야 그것도 결혼 기념일에 차 방전시키는 거 일부러 그러는 거지? " 막 따지니까 남편이 한 마디 하더란다.

" 당신이 하도 정신이 없으니까 나까지 옮긴 거 아냐?"

남편의 대답듣고 친구도 할 말이 없더란다. 둘이서 그 날 저녁에 냉동 만두 쪄서 서로 정신부터 잘 챙겨주자며  결혼10년차 기념식을 치뤘다는 친구의 수다에 진짜 많이 깔깔대고 웃었다. 그래도 너는 나보다 낫다 나는 이상하게 결혼 기념일도 하루 지나서 생각나는지 울 남편도 이젠 나 닮아가는 지 내 생일도 본인 생일도 달력에 챙겨 놓으면 뭐해 그렇게 잘 따지고 확인하던 달력을 그 날만 못보고 지나간다고 했다. 생일 미역국도 하루 지나서 끓인 적도 한 두번 아니라고  했더니 그 친구도 깔깔대고 웃었다.

 

그렇게 십 년이 또 지나가고 삼 년이 흘렀다. 그러니까 결혼한지 23년이 되니 참 감개가 무량하다. 애들만 커버린 것 같다. 더군다나 남편 말대로 이젠 환갑을 곧 바라본단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리게 보이고 싶어 안 달난 세상에 무슨 나이를 덤으로 얹어 늘리나 했지만 누가 가는 세월 잡을 수 있을까 . 이번 결혼 기념일 만큼 서로 불조심하듯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다짐하듯 결혼 기념일 날에 빨간 싸인팬으로  두껍게 아예 칠을 해 버렸다. 그랬더니 남편이 그런다.

우리 그러지 말고 기념일을 생각 날때 생일 땡기듯이 찾아 먹자고 한다. 가만히 그 말을 듣고보니 그러네.

 

맨날 생일이나 뭐나 하다못해 제삿날도 하루지나 생각나는 마누라 기묘한 정신력 때문에 웃지못할 사건이 한 두 번이 아닌데, 미리 땡겨서 치뤄버리면 잊어먹지는 않았다 자랑은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생각 난 김에 그냥 오늘 해버릴까 싶어 남편과 나는 영화구경을 하러 갈까 연극을 볼까 하다가 문득 내 친구 애기가 생각 나는 것이다. 혹시 내가 어제 문이나 미등을 켜놔서 차 방전되면 어떻게 해 얼른 차에 가서 시동을 걸어봤다. 부르릉 잘 걸린다. 내친김에 남편보고 빨리 나오라고 해서 영화관으로 씽씽 달렸다. 고급 레스토랑 요리는 애당초 내 체질도 아니고 남편과 처음 선 본 날 족발집에서 족발을 먹어었는데, 가다보니 순대 국밥집이 보여 점심도 거기서 먹자고 하는데 그러지요 헤헤 오늘 결혼 기념일인데 수육 한 접시 추가로 시켜 먹자고 하니 남편은 좋다고 한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영화관으로 가니 요즘은 식당에서 메뉴 고르듯 영화도 뭐 볼까 이거 헷갈린다.

 

남편은 액션영화라면 다 찾아본다는 광팬이다. 나는 싸우는 영화만 빼고 조용한 영화만 골라보니 같이 영화본다고 왔긴 왔는데 따로 따로 각자 취향대로 볼려니 결혼 기념일에 보는 영화를 따로 고른다는 것도 그렇고 할 수 없이 내가 한 발 양보 하기로 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액션영화를 같이 보자 한 발 양보한다고 하고 고른 영화는 " 아이언 맨" 요즘 최대 흥행작이라 뭐라나 남편은 기분이 좋은가 다음 내년 결혼 기념일에 내 취향의 영화를 같이 보자고 약속한단다. 그렇게 영화상영이 시작되고 한참 보는데 역시나 내가 왜 액션영화나 블록버스터를 안 보는 이유를 고루고루 다 갖춘 영화였다. 아이구 언제까지 하나 엉덩이도 오래 앉아 있으니 뻣뻣하고 저리다. 하필이면 앉은 자리가 가운데니 에구 이럴 줄 알았으면  가운데 앉지 말고 갓 쪽으로 앉았으면 나가기도 쉬운데 나중엔 골치가 딱딱 아프다. 남편은 어떻게 보고 있나 힐끗 쳐다봤더니 세상에 안마의자에 앉은 것 처럼 목은 뒤로 제쳐져 코까지 골며 푹 자고 있는 것이다. 아니 자기가 고른 영화를 보고 있어야지 남편의 허벅지를 꼬집었더니 벌떡 눈을 뜬다. 나도 참 기가 막히고 남편 얼굴은 더 황당하다. 영화가 끝나고 나와서 그랬다.

 

" 자기야 우리 결혼기념일 아직 안 지났으니까 그 때 내가 고른 영화 같이 봐야되? 알았지? 빨리 대답혀?" 남편은 눈만 껌벅껌벅한다. 그 좋아하는 치고 박고 폭탄터지는 소리에 씨끄러운 영화 앞에서 자다가 온 남편얼굴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조용한 영화는 아예 자장가 저리가랄 텐데, 그러고 보니 남편 귀밑머리가 하얗다. 나하고 같이 산 세월이 절대 짧은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 영화고 나발이고 당신 머리 염색부터 해야 되겠다" 했더니

아직은 괜찮단다. 집에 있을 땐 안보이던 흰머리나 얼굴에 주름이 왜 바깥에 나오니 노안이 된 내 눈에도 너무 잘 보인다. 내년 결혼 기념일되면 영화 보러가지 가지 말고 서로 염색이나 해 줘야 되겠다. 부침게 부쳐가면서 헤헤

집으로 돌아가면서 머리 염색약 한 병 사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