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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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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친구


BY 천정자 2011-07-22

내가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로 내려왔다고 하면 꼭 다시 묻는 말이 있다.

" 고향이 어디예요?"

 처음엔 무심코 서울이라고 말했지만 듣는 사람 표정은 그게 아니다 싶은 표정이다

내가 워낙 촌사람처럼 생긴 것이다.

요즘은 촌아줌마라고 딱 안성맞춤이다.

장난으로 사는 곳 여기가 고향이라고 하면 그렇게 생겼네요 이런다.

고향을 거짓말해서 득 될게 없지만, 그 대답에 급 같은 고향사람이 된 것이다.

서울에서 아무리 삼십여년 살았다고 해도 아무도 믿는 눈치가 없다.

그렇다고 서운 할 것도 없지만 오랜 만에 서울친구를 만나니까 이 친구가 심각한 얼굴로

나보고 한 마디 한다.

" 애 너는 무슨 충청도 사투리를 그렇게 잘하냐?"

참 내 환장하겠다. 이거 참 내가 지금 어디서 살고 있는데 당연히 사는 곳 말투는 저절로 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이 친구 배잡고 웃느라 바쁘다.

" 애 애 니 서울 말 좀 해라 너무 웃긴다!"

아니 같은 우리말인데 못 알아 들을리는 없을테고.

 

그래도 난 이 친구가 좋다.

나도 참 어지간하지만 이 친구도 진짜 걸작이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서 내노라하는 재벌기업의 임원인 아버지가 내 친구 아버지라는데

중요한 건  지금예야 알았다는 것이다. 이 친군 내가 아는 줄 알고 애기도 안했단다. 머리염색약을 주로 판다는 회사라면 다 알만한 사람 다 알텐데, 나는 이제야 소꿉친구 아버지가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어 봤으니, 서로 묻고 대답하는 우리도 마주보고 웃었다. 하긴 그게 우리 친구사이에 장애가 될 리 만무하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 학교 다닐때 컴퓨터에 자가용에 집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이 친구가 나를 만나러 일부러 산동네를 올라와사 우리집에 대문에 서서 같이 놀자고 하고, 단칸방인 울집에 앉아 부침게 구워먹고 수다떨고 그러다 다시 내가 집까지 바래다 줄때도 몰랐다. 친구집은 이층 양옥이고 우리집은 산꼭대기 달동네라는 것도 별로 의식하지 못해었다, 나 스므샇때까지 집에 전화가 없어 이 친군 늘 우리집에 직접 올라오느라 바뻤다고 지금 애기하니 진짜 울 집도 어지간히 가난했었나 보다. 그 정신머리나  기억이 또 가물가물한데, 그래도 이 친군 그런 티 하나도 없으니 나도 진짜 복은 타고 났다.

 

그렇게 가난하니 내 생일이라고 울 엄마 기억해주는 것만으로 고마운 때인데 내가 17살때 생일에 자기 집에 내 생일상을 차려주고 노래 불러주고 그 때 그 생일날은 정말 내 생애 처음 받아 본 생일상이었다. 그 친구가 바로 내 앞에 앉아서 배잡고 깔깔대고 웃고 나를 보고 즐거워하니 나도 감회가 새롭다.

 

지금이야 맛있는 거 다 갖다놓고 잔치를 벌려 초대할 수도 있지만, 정말 이 친구가 나에게 생일상을 차려 준 그 친구집이 안방풍경이 아련하다. 그래서 기억나냐고 하니까 니네 집에 집이 좁아서 울 집에서 한 거라고 한다.

" 야 나 그 때 먹은  그 카레 있잖어?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본거여?"

" 진짜?  그거 내가 한 거야"    

나는 지금도 카레를 만들 줄 모른다.

한 번 해봤더니 카레국이 되었다고 했더니 또 깔깔댄다. 남 못하는 게 그렇게 즐겁냐 하니

니가 못하는 게 한 두 가지냐 니네 엄마가 맨날  나만 오면 너 칠칠치 못하다고 시집은 어떻게 가냐 저렇게 못생겨서 니네 아빠가 돈 천만원 사위한테 줘야 데려간다느니 세상에 울 엄마 내 친구한테 뭔 말씀을 그렇게 많이했는지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다.

 

결혼한다고 혼수장만을 위해서 딸을 데리고 시장에 다녀야 하는데 난 시장가는 게 지금이나 그 때나 귀찮다고 잘 안갔으니 울 엄마 나를 집에 놔두고 내 친구 데리고 혼수시장에 가서 이불 사고 그릇사고 이 친구 그 애기 하면서 아마 너 말고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하라고 해도 나서서 지 혼수 장만 직접 할꺼라고 누가 그러냐는 등등.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친구가 그 때 골라준 접시가 아직도 있다. 내가 이쁜 것은 별로고 그림없고 색없고 간단하게 민무뉘인 그런 디자인 좋아한다고 접시며 그릇이 지금도 유행안타고 그냥 깨질 때까지 쓰고 잇는 중이다. 그래 맞아 맞어.. 

 

세월 참 무시 못하겠다.

자세히 내 친구 얼굴보니 잔주름도 턱살도 축 쳐졌다.

" 애 너두 늙어가는 구나 잉?"

내 말에 내 친구가 또 깔깔댄다.

사람이 늙지 그럼 안 늙냐? 안 늙고 어떻게 사냐?

그래 그래 맞다. 그래도 우린 다행이다. 말 안해도 맘 속 다 헤아리는 친구가 옆에 있으니까 같이 늙어도 덜 서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