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 나도 진짜 어리바리하지만 당신은 그래도 언제 나랑 결혼 한지 몇 년이나 됐나 이건 기억하고 있을 줄 알았는디,
애덜이 지금 몇 살이여?"
내가 재촉을 하고 얼른 생각 좀 해보라고 다그쳐도
남편이 눈만 꿈벅꿈벅하고 말은 없다.
' 자기야 나랑 선 본 날은 기억나는 겨?'
" 아니~~ 니는?"
세상에 나도 세상에서 태어나 처음 본 선에 남편도 첫선을 본 날 그 역사적이고 기가막힌 운명적인 날을 전혀 기억을 못하는데,
남편도 전혀 기억을 못한단다. 뭐 이런 일이 다 있다냐?
"그럼 우리 어디서 선 보고 점심에 식당에 간 것은 기억나?"
" 그거야 니가 장충당 골목집에 족발 먹고 싶다고 해서 그건 기억나는디 그게 가을인지 여름인지 도통 생각이 안나네.."
하긴 선 보는 남녀가 근사한 레스토랑에 앉아서 우아한 컵을 들고 상대를 살피는 선은 무수히 많이 보고 들은 남 애긴데.
난 그 때 진짜 배고팠고, 족발은 혼자서 그것도 여자가 아닌 아직 미혼인 아가씨가 가서 주문을 한다는 것은 내 체면이 영 아니었으니까. 남편이 뭐 먹고 싶냐고 물을 때 단 일초도 재고 없이
"우리 돼지 족발 먹으러가요?" 했으니 그건 죽어도 남편에겐 못 잊을 게다.
남편이 결혼하고 난 후 나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그 돼지족발 같이 먹자는 말에 갑자기 마음이 편해지더란다
얼마전에 이혼한 내 친구가 오랜만에 만나서 하는 애기가 떠오른다.
이혼을 할 땐 그 사유가 충분히 된다고 해서 합의이혼을 한 친구인데
시간이 많이 지나고 세월이 많이 흐르고 보니 도무지 그 이혼한 사유가 도통 기억이 안난단다.
결혼이나 이혼이나 가장 인생에서 중요한 행사인데,
나도 그 친구의 말에 이젠 어느정도 이해가 간다.
그 때 당시 그렇게 큰 문제들이 시나브로 오래전 사건들이 되고 사실이 희미해지거나 내 기억력이 떨어지는 가속도가
접속을 하면 잊어버려도 별 탈없는 별 게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다행이 남편은 결혼 기념일은 잊지 않았다. 나도 그건 기억은 한다.
남편이 또 묻는다.
" 큰 애가 지금 몇 살이여?"
환장하겠네...아니 신혼여행가서 생긴 애 나이 따지면 바로 계산되는 구먼.
" 아니 당신 아들 하나 있는 거 나이도 나한테 물으면 어떡혀?"
" 스므살인가? 열 아홉인가?
이 양반이 이젠 아들나이도 한 살 늘렸다 줄였다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울 아들 낳고 저거 언제 키워서 내 등허리가 가벼워지고 다 큰 아들 돈 벌어 아버지 어머니 용돈 주는
다른 집들을 보면 나도 좀 일찍 결혼을 할 걸 이런 적이 엊그제 같은데, 그 아들이 아버지키보다 더 크고 목소리도 어떻게 된 일인지
전화목소리도 아빠보다 더 굵고 허스키하다.
대학 기숙사에서 지내는 아들이 토요일이라고 집에 온다고 문자가 왔다.
남편에게 애기하니 그제야 그런다.
" 그럼 스므살이구먼!"
하이구..그러니까 우리가 같이 산 세월이 벌써 20년이 넘어간다.
진짜 세월 무진 빠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입학해서 처음 집에 온다는 아들한테 돼지족발이나 삶아줄까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