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애가 이제 삼 수하는디 좀 있으면 군대도 가야 되고 아직 대학을 못 들어가서 신검을 연기하려는데. 지가 못하고 나보고 어떻게 알아보라고 하는 거여? 어따가 알아봐야 되는겨?"
내 친구아들은 엄친아가 아니다. 말 그대로 재수생도 아니고 삼수생이다.
고등학교를 고1때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통과하여 대입을 준비중인데
느딧없이 군대를 먼저 가게 생긴 것이다.
그러니까 아들은 스므 살이고 군대는 엄마가 알아보라는 말에 이거 참 어디가
잘못 된건지 잘 된건지 나도 어이가 없다.
" 야야 니 나 좀 만나자 이들 좀 데리고 나와라?"
그렇게 해서 그 아들을 보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울 아들이랑 동갑내기인데.
그 아들이나 내 아들이나 본인이 직접 가야 할 군대를 엄마가 대신 가 줄수도 없는 법이다.
" 니 병무청아냐?" 내가 물으니
" 예.."
친구 아들은 그 신검 날짜가 다가 올수록 밥도 못 먹고 먹어도 소화를 잘 못시킨단다. 엄청 큰 스트레스인 것이다. 그러니 나도 기가 죽은 아들 기살리는 것은 잘 못하지만, 그나마 해 줄 수 있는 것은 제대로 된 정보을 전달할 수 있는 것 뿐이다.
" 니가 직접 병무청에 전화해서 육하원칙으로 왜 신검날짜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해야 하는데,
야 니 엄마가 대신 군대 가 줄 수도 없고 그런 법도 없는디 니가 엄마한테 알아보라고 했다며?"
어렵게 작은 식당을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하면서 번 돈으로 학원비에 생활비에 그렇개 지원해줘도 또 삼수를 하게 되었다면서 한숨을 푹푹 쉬는 내 친구의 하소연을 난 그대로 전했다.
니가 스므살이든 마흔살이든 니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있는 어떤 부모없다고 했다.
그리고 대학도 돈 안들이면서 삼 수 이든 사 수 이든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면 기회는 이때다 하고 하지만, 요즘 공교육보다 천장모르는 사교육비가 부지기수 여럿사람 잡아 먹는 시대다. 학원비가 한 달에 오십만원이 들어가면 그게 일년에 열 두번이고 거기다가 삼 년이면 36개월인데, 합계 금액이 1800 만원이다. 니가 대학 졸업해서 운 좋게 취업을 해서 첫 해 연봉이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그 때까지 엄마가 대 줘야 하는 돈이 지금보다 더 돈이 들어가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내가 물었다.
친구 아들은 눈이 아래로 축 처졌다. 말도 못한다. 당장 내일 모레 신검 받는 것에 올인 된 정신에
내가 딴지 걸 듯이 걸었으니 뭐 부터 생각해야 할 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나 보다 . 친구한테 또 전화가 왔다.
" 애 애 울 아들이 신검을 직접 전화해서 연기했어. 근디 니 말 참 잘하더라 잉? 내 자식이라고 말이 자식이지 이거 눈치보고 말도 못했는디 아무튼 고맙다."
" 그려 그런디 올 해 또 수능본대?" 하고 물었다.
학원에 안가고 대신 EBS수능 강의를 듣는단다. 그것도 한 삼십만원 들어간단다. 그래도 그거라도 어디냐고 한다. 매달 과외비에 용돈에 얼추 백만원이 들어갔었는데 많이 줄었다고 좋아한다.
친구전화를 끊고 영 씁쓸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뭔 가 좀 이상하다. 교육은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돈을 어디 다른데다 못 쓰게 할려고 사교육을 만들어 어디에도 정신을 주지말고 오로지 자식들 교육에 몰입하라는 신흥종교라고 하고 싶다.
자식도 나이 먹으면서 부모도 나이들어 늙어간다. 옛날이야 소 팔고 논 팔아 가르친 자식이 늙은 부모 봉양하는 시대는 철 지난 유행이되었다. 그렇게 가르친 자식들 전부 효자되는 세상이 아님을 우린 잘 안다. 오죽햇으면 못 가르친 자식이 부모모신다는 애기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 달 생활비에 반토막을 뚝 잘라 학원에 과외비에 몽땅 올인하는 것은 일단 중지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남들은 다하는데 나만 못하면 뒤처진다는 그 생전 보지못한 괴물같은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을려고 대출까지 받아 사교육을 시켜야 안심한다는 학부모들도 수두룩하다. 요즘 잘 가르친 자식들도 전부 잘 되는 시대도 아니다. 사법고시를 통과한 사람중에 열에 넷은 취업도 못하고 변호사 개업도 못하는 지금에 가장 선호하는 직업들 중에 변호사나 의사들도 이젠 은행에서도 위험한 직업으로 분류가 될 정도다. 이상하게 일류대를 졸업한 사람들 일 시켜보면 수동적이며 시키는 잃 외에는 찾아서 할 줄 모르는 융통성이 결여되고, 적응성이 뒤 떨어진다는 보고된 사례도 있다. 되레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지방대생들이 능동적으로 어려운 일 굳은 일 가리지 않고 일하여 그 회사의 CEO가 된 사례도 많다.
대학진학률이 80프로 인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배운 사람들은 넘치는데 제대로 일 할 곳도 못 찾고, 조금 어렵고 지저분한데는 제외시키고 남에게 체면을 차릴 모양새로 그럴 듯한 기업만 찾아다니게 하는 취업재수생이 세어 보지 않아서 그렇지 엄청나다. 대입 재수생만큼 취업 재수생은 말 그대로 부모 등골 휘는데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부모가 노후에 쓸 돈을 몽땅 자식들이 미리 땡겨 쓰는 셈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한 자식이 부모 노후를 책임지겠소 할 만큼 평생직장 영구불변 철통밥이 보장되는 직장이나 직업을 가져야 하는데 요즘도 없는데 기대 할 것 기대해야한다.그러니 이런 것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자식의 앞 날에 모두 돌봐주고 자식의 미래에 거는 기대는 부모의 미래와 별개가 된 것은 오래 전에 사회현상이 이미 자명하게 설명 해준다. 어렵게 말하고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교육정책에 일일히 대꾸 할 필요는 없어진 것이다. 다만 그 중에 하나 하나 내가 고르고 따지고 비교하여 고르는 법을 자식이 있다면 우선 이것 부터 상식처럼 철저하게 익혀둬야 한다. 이젠 노후도 내가 아는 만큼 따지는 만큼 건강한 노후가 보장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자식은 말 그대로 자식인생 따로 국밥이나 마찬가지이다.
친구따라 강남가는 식의 남 보란듯이 하는 교육은 이젠 정말 아니다. 남이 하니 나도 그 것 안하면 불안한 것은 더 더욱 교육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성장하여 어떻게 자신의 앞가림을 부모와 상관없이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도 내 아들한테 한 마디 하고 싶다.
" 니 인생 니가 알아서 개척해라! 실패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아프기도 할 것이고 쫄닥 망해봐야 어려운 사람들 심정을 알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