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버스를 타고 남대문에서 내려 남대문시장을 가로질러 한 가운데 좌판이 길게 늘어뜨려 그 길가로 모퉁이 끄트머리에 돌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남산을 끼고 도는 골목이 시작된 곳인데, 이번에 거길 찾아보니 세상에 내 기억에 남은 길은 모두 어디로 도망가버렷다.
하긴 세월이 그냥 머물기만 하지는 않을테고,
서울역이 가까워 지하도로 걸어가면 심심찮게 노숙자들도 그 땐 왜그리 많았는지. 구텡이 으슥한 곳 어수룩하게 생긴 몇 몇의 남자들이 몰려 야바위꾼이 돌리는 작은 세 개의 컵을 돌리는 것을 보고 이런 세상도 있긴 있구나 했던 그 기억이 모두 색바랜 칼라사진처럼 희미하다.
일부러라도 그런 풍경을 비켜 힐튼호텔 쪽으로 에돌아 올라가는 샛길도 이미 흔적이 없다.
두 정거장만 가면 금방 내릴 것을 거꾸로 가도 모르는 방향치는 그 때 알아봐야 하는데
용케 지금도 차는 어디서 타요 물어가면서 다니니 내 다리야 진짜 고맙다 이런 인사도
할 줄 알게 되었다. 그 만큼 오래 숙성이 되야 사람이 사람을 알아 보듯이 자꾸 깊어가는
맛이 나나 보다. 쉬운 애긴 아닌데 너무 어렵게 길을 베베 꼬여 못 찾게 만드는 숨은 그림이 된 것일까.
몇 십년 전엔 미처 예상치 못한 남산을 다시 오르면서
또 다른 각오를 갖게 되었다.
앞으로 잘 살아야겠다.
산처럼 나무처럼 나이먹어 가는 것은 똑같은 일상과 시간의 흐름인데 각각 따로 따로 분류하는것은 어불성설이다.
돈 많이 버는 것도 돈 잘 쓰는 것도 자식 잘 키우는 거랑 내 건강 잘 챙기는 것도
매 한가지 모두 잘 사는 것 중에 하나 일 것이다. 다만 무리하게 너무 한 곳에 몰리지 말 것등등, 한 쪽으로 치우친 중독에 걸려도 모를 것들을 조금씩만 걷어내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할 것이고, 여러가지 많은 생각을 갖게 한 여행이었다.
또 모르겠다. 한 십년 후에 다시 남산 오를때 어떻게 많이 변했을까 그것도 궁금하지만 다 같이 살면서 특히 인간 관계가 한 쪽이 죽어야 끝난다는 선배의 말씀에 어느 선사님의 말씀보다 더 심오하다. 요즘 같이 일회용이니 초고속 인터넷 시대에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자꾸 그 귀한 대인관계를 맺고 싶다. 어찌 내 생각만으로 될까 싶지만, 서로 모를 땐 남이라고 하지만, 한 번 알면 두고 두고 숙성이되고 발효가 되는 사람과 사람의 이어지는 안 보이는 끈이 자꾸 갖고 싶은 것이다. 욕심을 부린다면 내가 먼저 죽어도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 하나라도 남 부러울 것 없을 것 같은 내 생각이다.
나를 낳으신 울엄마가 나에게 하신 말씀중에
" 야야 니 몸매에 얼굴도 이뻣으면 여러 남자 잡아당겼을 거다아!"
울 엄마는 지금도 끝까지 내가 얼굴이 못생겨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신다. 아예 대놓고 그런신다.어이가 없다. 처음에 그 애길 들을 땐 요즘처럼 외모 지상주의가 제 일의 종교처럼 날로 힘이 쎄지는데 울 엄마가 계모가 아닌 이상 어떻게 저런 말을 하실까 좀 속상했지만. 나중에 나이들어 보니 울 딸 길러보니 몸매 꽝이고, 얼굴은 못생긴 나를 전부 그대로 복사해갔으니 나 원 참!
나를 기억해주나 마나 날마다 자기 얼굴보고 내 얼굴 쓰다듬듯 문지르고 아껴 줄테니 더 이상 바라면 과욕이다. 누굴 기억해 준다는 것은 습관이다. 당연한 것이자만 그 당연한 것들이 제 자리에 없을 땐 그제야 불편하고 서운하고 섭섭하다.그래서 있을 때 잘 챙기고 작은 감사라도 할 수 있을 때 하라는 말이 백 번 맞을 게다.
남산에서 내려와 집에 돌아와서 아침에 일어나려고 하니 종아리가 무진 땡긴다.
이럴 때 또 산에 올라야 하는데. 운동회 끝나고 그 다음 날 아침 다리가 후둘 후둘하다.
또 산에 올라야 한다.그래야 뭉친 근육이 풀어질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