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있는 9월은 남편의 애가 탄다.
내가 시댁에 언제 갈지 그게 최대의 관심사다.
큰 며느린 난데 남편은 큰 아들임에도 늘 나에게 묻는다.
" 니 언제 갈 겨?"
" 어딜?" 나는 생뚱맞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 이 번엔 좀 일찍 가야 된다구? 부침개도 전도 다 부칠려면 좀 일찍 가야 한다구?"
가만히 남편 애길 들어보면 내가 부침개만 잘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게 전부 나에겐 그야말로 꽝이다. 그럼에도 나를 보고 사정하는 이유는 따로 생긴 것이다.
현재 며느리가 나 밖에 없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처지가 명절이나 제사가 돌아오면 늘 절절매는 남편의 눈치만 더 늘어났다.
이빨 없으면 잇몸이 대신 한다고 하지만 나는 잇몸이 아닌 천하의 농땡이 부리는 날라리 며느리가 된 지 오래였고, 나에게 장 흥정을 보라고 현금을 듬뿍 지갑에 채워 주지 않는 한 절대 시장에 안 가는 맏며느리가 된 지 이 십여 년째에 들어서니 느는 건 배째라 나 모른다 불 난 집 구경하는 것처럼 되 버렸다.
명절 날 되기 전 젤 바쁜 분은 울 시부모님들이다. 살림 꽝 며느리가 요리를 잘한다고 누가 말 해도 믿지 않을 것이고, 요리 몰라 먹을 줄 만 아는 큰 며느리가 있어 준 것 만해도 감지덕지가 된 울 시어머니는 나보고 일찍 오라 가라 할 권력은 애시당초 물건너 가버렸으니, 나도 이런 세상이 올 줄은 미처 몰랐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좋은 것은 울 어머니도 젊어선 전혀 살림 문외한이신데. 싫든 좋든 당신이 손수 밥을 해야 하고 살림을 해야 하고, 거기다 세 명의 손자 손녀를 거느린 덕에 조부모로서 육아까지 당당하느라 나이드시면서 더 바쁘게 사신다.
어찌보면 나 같은 며느리도 있어야 당신이 손수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직접 해보시고 그 동안 당신이 받은 대접들이 절대 쉽게 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느끼는 것도 당신에겐 삶의 경험을 추가 한다고 생각이 든다.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든다고 해도 어렵지만, 이왕지사 이렇게 된 바엔 그냥 나도 지켜 볼 수 밖에 없다. 경우가 있고 도리가 있다는 세상에 나같은 며느리가 또 있으면 안되겠지만. 나도 지금은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이용하는 늙은 여우가 되가는 것인지, 아님 울 시어머님 훈련을 시키는 건지 잘 모르겠다.
명절 땐 남편도 스트레스 받나보다. 옛날엔 며느리가 넷이나 되었을 땐 거실에 술 상 받아와라 술 사와라 등등 오만가지 잡 심부름을 시키더니 주방에 나 혼자 잇는 것이 안쓰러운가 이젠 전 붙 칠 거 뒷정리를 해주고 시장 봐주는 거며, 설겆이도 같이 해야 내 입이 댓발 안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혼자 된 시동생들이 저녁 나절에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올 땐 울 시엄니도 괜히 안 방에 쑥 들어간다. 멀쩡한 아들이 괜히 멀쩡한 것이 아니다. 요즘 처럼 이혼 당한 남자들이 너무 흔해서 그냥 혼자사는 남자들이라면 더욱 맞을 것인데. 울 집에 이런 남자들이 셋이나 되니 할 말이 없다.울 집에 얼떨결에 효자가 된 아들이 바로 울 남편이다. 살림을 못하든 일을 못하든 그래도 가정을 굳건하게 지키는 큰 아들이 뭐라고 하면 울 어머니 한 마디 말이라도 조심스럽게 하신다.
울 엄니는 또 나만 보면 나간 며느리 흉을 또 보신다. 나도 하도 들어 그 순서를 잘 알아버렸지만. 이혼한 며느리가 한가위라고 전화하는 거 봤냐고 묻고 싶지만. 그래도 그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못 들은 척하고 말았다. 울 엄니 홧 병 안날려면 그 흉이리도 들어줘야 건강하게 저 손자 손녀들을 키워 줄 것 같아서다.
그 동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나도 이런 애길 할 지 몰랐지만. 이젠 남편이 재촉하기 전에 좀 일찍 시댁에 가 보려고 한다. 나도 나중에 며느리를 틀림없이 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