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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부자가 되고 싶다


BY 천정자 2010-08-07

 

나는 천천히 부자가 되고 싶다


이 제목을 지어놓고 한참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동안 글쓰기를 보류한 상태였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남녀노소를 불문 하고 모두 부자가 되고 싶어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 적이 아주 많았다. 물론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내 생각이니, 아주 지극히 작은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니, 여기에 이의를 제기 할 분은 오해 없기 바란다.


요즘 세상엔 부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바로 불행과 연결된다.

행복하지 못함에 속한다는 것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열외로 밀려 나가는 코스요리처럼 정해진 순서다.


일단 열외로 빠지면 부자들을 바라 볼 때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나는 여기까지 순서를 모두 체험하였다. 그래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공부를 좀 하려고 했고, 투자도 한 번 시도를 하려고 했으나, 공부는 원래 체질적으로 엉덩이가 의자를 거부한다고 할까? 좀 오래 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쥐가 난다. 다른 사람들은 다리에 쥐가 난다고 하는데, 좀체 뭘 진득하게 하는 것을 가장 지루하게 여겼다. 투자나 투기는 민첩하게 움직이는 발이나 두뇌가 하는 것인데,  나같이 느리고 게으른 사람이 부자가 되려면 세상이 바뀌어도 한 참 바뀌어야 한다. 나 하나 때문에 세상을 바뀐다는 것을 꿈꾼다는 것은 그저 개가 꾸는 꿈이려니 하고 내벼려 두었다.


그래도 자꾸  관심이 간다. 돈이 많아서 남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싶고, 백화점이나 마트나 단골고객이 아닌 VIP대접을 받으면 우쭐한 그 기분도 느끼고 싶은데. tv에서 그래도 아무 느낌 없이 채널 돌리면 생전 살아보지 못할 궁전 같은 아파트를 광고로 실컷 구경하면 그 때 그 뿐일지언정 실제 경험이라는 것은 천지차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누린다는 것은 자신의 생활에 충분하게 여건을 갖춰져야 한다는 애기도 들었지만, 여기가 북한이 아니고서야 얼마든지 꿈꾸는 데는 무제한이라는 것은 상식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나에게 이상한 생각이 좀 물들었다. 뭐가 되기 위해서 사는 내 인생이 도대체 주제가 뭐냐? 도대체 나의 주제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 생긴 목숨일까? 우리부모가 나를 낳기 전 큰 인물을 낳게 해 달라고 기도한 애기는 아직 못 들었고, 돌상을 차려 무명실을 집었는지 연필을 집었는지 아직 울 엄마는 애길 해주 질 않아 잘 모르겠다. 오래 살 던가 부자가 되서 오래 살던가, 아님 그럭저럭 대충 살다가 가는 나의 팔자인지 이게 참 궁금해지는 것이다. 


내 팔자 내가 만든다는 말은 있는데. 내가 부자가 못 되어도 내 탓인 지금에 누굴 부러워하던 말던 나의 자유의지이니까 자동으로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안 죽는 부지는 없다는데, 눈을 못 감고 죽은 사람들은 여럿 봤지만, 그들은 부자가 아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한 어머니가 임종을 하시기 전인데 중환자 실은 면회제한이 있어 일반병실로 옮기고 보니 전 가족이 모두 들어갈 수 없는 작은 병실이라 순서대로 들어가 임종 전 절차를 본 적이 있었다. 의사는 몇 시간이 안 남았다고 했는데, 그 어머니는 하루를 꼬박 넘기시니 온 가족이 지친 것이다. 지켜보는 우리 입장은 환자나 그 가족이나 서로 고생인데. 그런데 오랜 경험이 있는 수간호사가 가족에게 묻는다, 아직 오지 않은 가족이 계시냐? 했더니 막내가 캐나다에 살고 있는데 너무 멀어 아직 오려면 시간이 더 걸린다는 애길 듣고 대답을 하는 것이다.

“ 어머니 지금 막내가 여기로 오고 계신답니다. 마음 편안히 잡수셔요”

이렇게 전해들은 그 말 한마디에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어머니의 얼굴이 편해졌었다. 여기서 편해졌다는 것은 조용히 마지막 숨을 멈추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이 임종풍경이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도 구경하기 힘들어 졌다. 환자가 임종이 얼마 안 남았다고 보호자에게 연락하면 되돌아오는 대답이

“ 사망하시면 연락주세요?” 그걸로 끝이다.

울고불고 난리치는 것은 고사하고 환자보호자로서 한 번이라도 더 드려다 볼 수 있으련만, 무슨 간단한 사무처리 하듯이 간단명료한 그 대답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그런데 그 환자가 뭐가 좀 된다거나 돈이 많다거나 그런 경우엔 또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부모인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장이라도 결정하고 난 후 재산나누기든 뭐를  해도 될 일을 형제끼리 멱살잡고 싸우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싸움을 말리다가 더 큰 싸움 되는 경우도 봤고, 그 돈이나 땅이 뭔지 모르지만 사람으로 살다가 죽으면 땡전 한 푼도, 바늘로 찍어 둔 땅도 못 가져가는 것을 잘 알 텐데 너무 여유가 없이 살아도 그렇게 빡빡하게 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가 요즘 몸살을 앓는다. 어디는 비가 많이 와서 떠내려가서 죽고, 어디는 큰 산불이나서 곡물을 다 태워 수출을 못 하겠다고 하고. 또 더워서 날이면 날마다 난리이고, 거기다가 정치나 경제나 매양 다를 것 없이 떠들어대는 목소리들도 이제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다. 미치지 않음 다행이다.


어쩌다가 나도 이런 신세한탄만 하는 글을 쓰는지 나 원 참!

그래도 나에게 아직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든지 있다.

바로 오늘이다. 내가 앞으로 당장 부자가 되지 않든 말든 상관없이

이 지구상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골고루 나눠가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어디 시간뿐이랴? 하늘을 보면 내 눈에 보이는 곳 까지 나의 하늘이라고 해도 누구도 이의를 제기 하지 않는 공간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지붕이 있으면  전 지구에서 몇 명 안되는 부자이고, 비 올 때 우산을 쓸 수 있으면 부자란다. 옷 한 벌 입으면 부자이고, 먼 길 떠날 때 여벌의 신발이 잇다면 부자란다. 그러고 보면 나도 너무 그동안 편안하게 잘 살았던 것 같다. 오늘은 시간을 내어 식구들 얼굴을 보며 식사를 함께 해야겠다.

가장 행복한 것은 누릴 수 있을 때 해보는 것이며 행동하는 것이라고 누가 말씀한건데, 이 놈의 기억력 덕분에 도통 기억이 없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천 번 만 번 맞는 말씀이다. 아무튼 나는 앞으로 천천히 되어가는 부자로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