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눈이 안 보인다.
작은 글씨가 뭉게지고 흰것은 종이고 까만 것은 글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다.
병원차트는 밤엔 빨간 볼팬으로 써야 하는데
까만 색보다 붉은 색은 더 흐릿하다.
내가 자랑한다면 양 쪽 눈 시력이 1.2인데
그 동안 너무 자랑해서인가 벌 받은 기분이다.
같이 일하시는 선생님이 그러시네
" 얼른 안경점에 가서 돋보기라도 맞춰야지?'
정말 당장 뛰어가서 안경을 맞추려고 보니
먼저 시력검사를 해야 한단다.
큰 기계앞에 내 턱을 걸고 이것 저것 유리알을 올려 놓고
이건 보이냐 잘 보이냐? 등등 몇 번을 유리알을 바꾸더니
노안이란다.
" 예? 노안이 뭐예요?'
안경사가 빙그레 웃으시며 그런다.
사람은 제일 먼저 늙는 곳이 바로 눈이란다.
그러니까 내가 눈이 늙어서 잘 안보이는 것이니
이른 바 " 노안" 이란다.
우선 급한대로 돋보기 안경을 맞추란다.
그리고 안경을 맞춰야 한단다.
거울을 보고 안경테를 고르자니 괜히 맘이 서글프다.
아휴! 그 동안 안경없이 잘 살았는데
그러고 보니 눈에 대한 감사나 고마움을 전혀 느끼지 못 한 채
살았다는 생각에 또 미안해진다.
이왕에 이렇게 되었어도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자
결심하고 돋보기 안경을 쓴 내 모습을 거울로 보니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내 얼굴에 왠 주근깨가 더 많이 생긴거여?
그러고 보니 그동안 잘 안보이는 것은 글씨만 아니라 내 얼굴에 콧잔등에 밤하늘에 뿌린
별자리처럼 콕콕 박힌 것들도 못 본 것인데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내 얼굴에 주근깨가 없어졌다고 했으니
안경쓰고 본 내 얼굴에 늙어버린 말괄량이 삐삐가 된 기분이다.
이거 안경을 쓰고 내 얼굴을 보니 참 볼만하다. 나도 이런데 남편은 또 뭐라고 하려나.
안경을 쓰면 지적으로 보인다고 아니면 주근깨라도 감춰줘 깔끔한 도시여성들 처럼 세련되게 보였으면 했지만, 낮은 콧등에 겨우 걸친 모습이 바느질하는 할머니랑 똑같다.
책을 봐도 우선 글씨 큰 거부터 찾게 되고, 메일도 보낼때 내가 안 보이니 큰 글씨로 쓰게 되고, 매우 큰 것인 줄 알고 집었다가 안경을 벗으면 뭐 이렇게 작았나? 싶고, 더욱 아들놈 성적표나 딸내미 가정통신문을 원래 습관대로 안경없이 들여다 봐도 이젠 까만 개미가 와글와글 지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안경을 쓰고 남편의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한 마디 했다.
' 자기야! 이마에 주름이 언제 생긴 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