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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실언니의 사생활


BY 천정자 2010-07-10

" 평생 살면서 돈 한 번 꾸지 못하면 인생바보가 되는 겨!

긍께 뭔일이 미리 알고 사는 게 있으면 사는게 뭔 재미냐 이거지?

니 영화 본 거 또 맞바로 재밌다고 또 본 적 있냐?

 

"있는 디..?"

'그려서 처음 본 거처럼 가슴이 막 뛰데?"

"아니.. 내용은 아니께 그냥 대사만 확인하는 거지 뭐..."

 

거 봐라...우덜이 내일 알면 그거이 무슨 맛이냐? 앙꼬 없는 맛대가리 없는 빵먹는거지! 원래 사는게 그런 겨!

 

' 근디..언니야...그 때 그 돈 다 어따가 썼어?"

배실배실 웃으며 나는 물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으고 안쓰던 돈이 소리소문없이 없어졌다거나 누가 훔쳐 갔다는 등 도둑맞은 애길  못 들었는데 도무지 돈이 하나두 없는 것처럼 사는 영실언니다.

 

나에겐 친언니가 없는데. 유달리 피붙이처럼 언니같은 푸근함이 있는 분이다.

옜날 젊었를 때 청계천에서 시장에 있는 공장에서 한 십여년 시다로  일을 했었는데.

거기서 재단을 하던 재단사와 눈이 맞아 결혼식은 나중에 우선 생긴 애부터 낳고 하자고 후다닥 일부터 저지른 영실언니를 알고 지낸지 어언 한 십오년이 다 되어간다.

 

같이 살다 우연히 알고보니 이 재단사가 애가 둘 달린 유부남이 었다는 것을  영실언니가 이 사실을 안 후 두 말 않고

얼른 도로 집으로 가라고 했단다. 안 그러면 이제 막 두 돌된 아들과 동반 자살하겠다고 덤벼들었으니 재단사가 혼비백산하여 그렇게 돌아 갔던 재단사아저씨가  전처 애들을 데리고 와 선 대문 앞에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니 어찌보면 영실언니한테 미안해서 그렇게 했나 슬며시 늦은 밤에 얘들부터 하나씩 들여 보내놓고 나중에 애들 이름부르며 찾듯이 같이 들어와서 하루 이틀 살다보니 쫒아내지도 못하고 그냥 하루 이틀 살다가 보니 일 이년 후딱 가버리는 게 일도 아니더란다.

 

 언니애길 듣다보면 그렇게 당장 큰 일 날 것도 별거 아닌 것처럼 우습게 되버린 게 한 두가지 아니다. 블라우스만 전문적으로 만든다는 의상실에서 미싱을 밟아 돈을 벌고, 그나마 일거리가  떨어지면 시내 극장주인과 어떻게 잘 아는지 모르지만 저녁마다 화장실청소만 몇 년을  다니며  그렇게 어렵게 모은 돈이 남편이 데리고 온 아들 딸에게 학비며 결혼 할 때 써야 한다고 단단히 묶어두더니 기어이 아들장가 가는 날  통장으로 턱 쥐어주면서 그랬단다.

 

" 원래 돈은 버는 사람이 임자가 아녀!  모은 사람도 주인이 아녀 ! 돈은 쓰는  사람이 임자여!"

 

친 엄마가 아닌 계모한테 통장으로 전달 받은 통장을  앞에두고 그 아들은  영실언니 앞에서 그렇게 서럽게 울더란다. 니 에비 에미 죽었냐? 그만 울라고 해도 그렇게 울더란다.

"하긴 그 놈이 좀 내속을 썪였냐? 지 어메가 멀쩡하게 살아있는디 내가 해준 밥은 안 먹고 다니고 고등학교 땐 줄창 학교 불려가 엄마 오라가라 혀고 전화벨만 울리면 오늘은 어느 경찰서인가보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드라, 밤엔 전화선도 아예 뽑아 놓으면 뭔일이 안 날 것 같어서 한 동안 그러구 살기도 했지. 그려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그건 고맙더만 이젠 장가 가면 니는 내 아들이 아니다. 사실은 처가집에 든 거니께 그 집 사위는 자식이라고 하던디 장인 장모한테 드는 거여..글고 니 색시 마음 아프게 하면 니가 더 그만큼 고생이라는거 명심해라! "

이런 말도 했다고 하는디

"그래도 시원섭섭하더라..그 놈 처음 델고 왔을 때 천하 그런개구쟁이도 없었다. 내가  니 아빠를 모르고 지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덜컥 일 저질러 그게 죄라서 암말도 못하고 같이 뒹굴고 산거지. 근디. 왜 이리 시간이 미친년 널뜨기 보다 더 심하게 가버린다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아득허구먼!"

 

 영실언니가 나를 참 좋아한다. 한 번은 왜 내가 좋은 거여? 했더니 한 번 말이 들어가면 절대 다른데는 말이 안 샌단다. 나에겐 말 잠금쇠가 있어서 그런가보다 한단다.내가 무슨 창고여 ? 입에다 자물쇠를 달고 다니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영실언니가 제대로 나에게 걸린 것이다. 그것도 전국구로 아니면 이 지구촌에 이렇게 수다로 언니 사생활을 폭로 할 줄은 꿈에도 모르실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에이 모르겠다 나중에 일 터지면 그게 다 비스무레한 게 인생사들 아녀? 하고 시침 뚝 떼면 영실언니 그런가보다하고 눈만 꿈벅 꿈벅 할 것 같고. 누군들 비켜가지 못 할 그 사연들인데.

 

 

그 화려한 봄이 가고 바야흐로 우거진 신록이 한창인  계절이 왔다.  언니하고 나하고 어디 산 좋고 물좋은 곳에 오붓하게 산책로를 따라 걸어 다니다가 운 좋으면 산취도 뜯고 삐죽히 꼿꼿하게 물오른 나물도 꺽으러 가자고 해 봐야 되겠다. 그 때 슬며시 내가 전국구로 언니애기 수다 떨었다고  살짝 고백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