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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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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정자 2010-04-24

어! 누가 우리 흙가져 갔어? 엉! 작년에도 가져가서 돈주고 사서  썼는디

언 놈이여? 아이구 이거 참 동네에 오래 같이 살았는디 신고도 못 하겟고.."

울 남편은 착하다. 그런데 이 착한 것이 참 탈이다.

농사를 짓는데 나라에서 무상으로 주는 흙을 작년에도 올 해도 집 앞에

쌓아 놓았는데. 누가 홀라당 가져 가버렸다.

 

서로 몇 십년 같이 한 동네에 살다보니 숟가락 몇 개는 모르더라도

작년보다 배가 더 튀어나오고, 흰머리가 더 하얗게 세고, 서로 마주보고 웃으면 주름살이

자글자글 늘어 너두 참 많이 늙어가는구나 이정도인 이웃사촌인데.

 

세상이 참 어수선해도 울 동네는 이런 일이 전혀 없었던지라

남편이 참 난감한 것이다. 거기에 누구에게 수소문 해봤자

자신의 집 앞에서 놔둔 것을 제대로 관리를 못한 책임이 더 크기에

그저 속앓이로 나만 보면 성질 낸다.

" 도대체 언 놈일까?"

난들 아나..요즘은 직접 목격하고 그 증거를 대지 않는 한

무죄가 되는 세상인데.

 

옆 집에 사시는 할머니는 며느리가 없지만

손녀 둘에 손자 하나를 키워가며 해마다 깻잎 농사를 지신다.

이 분이 그러시네.

" 내가 본 것은 아닌디 누군 줄 알거같구먼!"

올 해 일흔하고도 일곱이신 이 분이 오랫동안 겪은 혜안으로 살초롬 실눈를 뜨시고

우리집 담장 너머 먼 곳을 은근히 바라보시더니

" 그렇게 가져가서 부자 되면 그걸로 망하는디 겁나는 게 없는가벼?"

그러시더니 코를 팽 푸시더니 바지 주머니에서 곽이 빨간 장미담배를 끄내신다.

남편과 함께 마당에 있는 평상에서 맞담배를 피시면서

올 해 농사는 이렇게나 저렇거나 애들 학비도 못 될 것 같고.

며느리 없는 시어머니인 할머니 그 말씀에 목이 더 메이시나 기침을 쿨럭쿨럭 하시고 누런 가래를 칵하고 마당에 밷으신다.

 

막내 아들이 이혼을 하고 그 대신 애들을 모두 할머니가 키우시다보니 벌써 시간이 십 년이나 됐다.

나도 슬그머니 부엌에서  커피믹스를 진하게 타서 할머니 한 잔 나 한잔 마주보고 마셧다.

" 가져간 흙 어따가 감추겄어? 보나마나 지들 밭에 뿌리겠제?'

남편이 그 애길 듣더니 한 참후 그런다.

"그러네유. 어치피 흙이니 흙으로 가겄지유.."

 

누가 가져가든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 가져간 흙때문에 우린 또 돈을 주고 사야한다. 착한 남편은 이 애길 또 하네.

' 근디유? 서로 사정 뻔한디 왜 가져 갔는지 묻고 싶네유? 잉?'

 

옆 집 할머니 남편의 그 말에 대답이

' 아! 내가 그걸 알면 울 집 대문에 깃발 꽂으라고?"

우하하!! 서로 같이 웃는다.

 

한 동네에서 같이 오래 사는데 저절로  동네주민이 되듯이

지구에서 살면 지구인이 되나보다.

 

그나저나 우리 흙 가져간 놈이 누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