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깃세가 두 달 연체되면 어김없이 그 아저씨가 왔다.
그런데 수도세도 밀리면 다른 아저씨가 오긴 오는데 육개월 밀리니까
아예 게량기를 작동 못하게 무슨 조작을 하셨다.
전깃세는 고지서에 빨간색 글씨로 두껍게 인쇄된
"단전예고" 라는 말이 붙어 있고 밀린 영수증도 함거번에 묶어서
대문사이에 꽂아 놓은 것을 보면 멀리서 대문에 꽂힌 편지들만 봐도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그 땐 가을이라 우리집 울타리에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노란잎들이 떨어지다 못해
대문앞에 쌓이고 틈에 끼이다 보니 또 멀리서 보니 노란표가 붙어 경고장처럼 보여
착각한 적이 있어 괜히 자라가슴이 되고 숨죽인 적도 있었다.
이런 적이 언제 있엇던 일인가 햇수를 따져보니 거진 십 년이 다 되어간다.
그 땐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남에게 돈 꾸러 다닐려고 내가 결혼을 했나?
시집이 부잣집아라면서 왜 그렇게 살어? 묻는 사람들을 피하고 다닌 적도 있었다.
남편의 무능함만이 내가 유일하게 변명을 할 수 있는 핑계를 몇 번씩 두고두고사용해도 동이 나지 않았다.
누가 무엇이 없어서 불편한 것을 말하라면 한없이 목록을 써도 공책 한 권이 될 것이었다.
아픈 딸아이와 같이 걸어서 몇 정거장을 거쳐 집으로 돌아 오는 길이 참 서글프고 그래서
마침 어느 임대아파트에 옥상까지 올라갔었다. 물론 딸아이는 놀이터에서 놀게 하고 나 혼자 올라간 옥상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아마 15층 아파트였을 것이다.
다시 엘리베이터로 내려와 경비실에 가서 경비 아저씨에게 열쇠를 달라고 하니
다른 말은 않하시고 열심히 찾으시는데. 금방 다른 경비와 교대 해서 내일 또 오라고 하신다.
나도 그 말을 듣고 놀이터에서 노는 딸아이를 찾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 왔었다.
그 때도 가을이었다. 길가에 키가 고만고만하게 날씬한 코스모스가 을긋불긋 피워대는데
그 꽃을 보고도 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순간 딸아이를 손을 꼭 잡았다.
길가에 도로에서 아무렇게 휙휙 지나가는 차에 무작정 뛰어들고 싶었다.
그냥 죽으면 아무것도 아닐텐데.
지금 내가 살면 싫어서 억지로 살면 뭐 해?
내가 죽으면 세상에 나 하나 없다고 뭐 달라질 것 하나도 없을건데.
그렇게 귿은 결심으로 지나가는 차들을 보고 딸아이 손목을 또 굳게 잡았다.
그런데 그런데 내 손을 꽉 잡은
딸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앞니가 두개가 빠져 입안이 꺼멓게 보인채 헤헤대고 웃었다.
덧) 애기가 길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