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대체 어디를 갔다 오는 겨?"
" 이 여편네 또 어디갔어?"
" 오는 겨? 가고 있는 겨?"
" 순대 사오라고 했더니 만들어 오냐?"
" 김치 다 떨어졌어! 언제 담을 겨?
" 청국장이 찌게냐 ? 국이냐?"
" 시방 그게 중요한 거여?"
" 니 부킹가냐? 치마가 왜그리 짧어?"
위 말들은 노상 마누라인 나에게 남편이 하는 잔소리들이다.
아래 말은 전화로 하는 잔소리들이다.
" 니 또 어디에다 차 박지 마라아? 엉? 알아 들었어?"
" 지금 어디여?"
" 담배 떨어졌다 한 갑만 사와?"
" 보일러 기름 떨어졌어 얼릉 시켜?"
" 오면서 막걸리 받아 와라? 지금 찌게 살살 끓어?"
같이 오래 살다보면 잔소리도 주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함이 전혀 없다.
매일 듣고 매일 말하는 그 잔소리에 쇠귀에 경을 읽는다고 하더니
그 이유가 따로 있나보다. 잔소리에 일일히 대응를 하다보니 엄청 말다툼을 했지만
입장은 피장파장이다. 누가 이길 것도 질 것도 없는 심판없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좀 늦게 깨달은 게 흠이지만 이제라도 좀 안 것이 있다면
그냥 그 말을 나 아직 네 곁에 있어서 좋아!
나 아직 너를 사랑해
나 아직 너랑 사는 것이 즐거워
나 아직 너랑 할 말이 많아
내 애길 좀 들어 줘
뭐 이런 추상화 같은 말로 동시통역을 나 혼자 해석 하는 것이다.비록 착각이라도 괜히 혼자 비실비실 웃으면서 상상한다.
담배 사오라고 하면 속으로는 별로 기분이 안 좋아도
흠! 그려 그럼 담배값은 한 개비 당 만원이다 이렇게 바가지 씌우고 담배두 제 때에 못 사 피면서
할 일이 많은 마누라 보고 감히 담배를 사오라니 그럴 수 있냐고 큰 소리 탕탕쳐도 남편은 담배 안 사 올 까 봐 전전긍긍이다. 올 때 꼭 사와라? 하루종일 담배 굶었당께? 헤헤..밥 굶는 소리 보다
담배 못 펴서 목소리도 야들야들하다. 내가 돌아오면 내 가방부터 얼른 열어 본다. 참 내 담배가 그렇게 좋은가? 나보다 더 좋은 겨? 엉? 아 말 좀 혀? 근디 담배값은 ? 외상하면 연체료 붙어? 나도 별 별 잔소리를 만들어 떠든다. 남편이 귀담아 듣든 말든 나도 늘 똑같은 말잔치 한다.
남편은 묵은지에 돼지등뼈를 넣고 오래 지진 김치찌게를 끓이고 있었다.
" 아차차! 내가 막걸리 사오라고 할려고 했는디 오늘은 왜 벌써 왔냐?"
나 원 참 담배 사오라고 사정하더니 웬 막걸리 타령이냐고 나도 대답을 하고 찌게 국물을 맛보니
이거 아무래도 다시 슈퍼에 가야 겠다. 술은 없고 안주만 있으니.
시동을 걸고 막 출발하려니 전화가 온다.
" 빨리 사 갖고 와라? 어디로 새지 말고?"
내가 가끔 시장가다 삼천포로 빠지듯이 한 나절 다 되도록 안 돌아올 까봐 얼른 다짐을 받는다.
" 찌게 뼈다귀 다 먹지마아? 알았지이!!!"
오늘 참 날씨가 쌀쌀하다. 추운 이유는 바깥에 나돌다가도 때가 되면 돌아 가듯이 집으로 가라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름의 즐거운 핑계와 착각도 조금 섞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