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벌써 9주년이라니 가족들의
가슴앓이가 얼마나 심했을까
가히, 우리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
세월호 참사가 있기 한참 전에 나는 여기저기
많은 곳에 편지를 보냈었다.
알만한 곳에는 거의 다 ,,,,,
하지만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고
이 일을 어찌해야 될까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먼저 아는 것이
너무 힘들때가 있다.
바로 이럴 때다.
나는 나라에 어떤 큰 일이
있을때마다 여기저기 편지로
미리 보낸다.
그 분께서 참고를 하시는지도 알수 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만은 그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음에 혼자서 참으로 가슴 아파 했다.
결국 그런 일이 터지고 나는 너무
가슴이 아파 괴로웠다.
나는 집에서 팥 시루떡을 조금해서 세가지
과일과 일회용 접시도 가방에 넣고 그곳에 가서는
초코파이 한각을 사고 내가 쓴 책도 함께 가저가서
모두 올리고 그들의 명복을 한참을 빌어 주며
그들 모두 좋은 곳으로 가기를 소원하며 빌었다.;
내가 간절히 빌어 본다해도 뽀족한 수 있을까마는
그들에게 잠깐이나마 최선을 다해 빌어 주고 싶었다.
내가 진심을 다해 빌어 주고 있을때
어린 여학생 두 명이 교복을 입고
내 앞에 와서 고개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하던 기억이
지금도 실물을 본듯 생생하다
그때 나 자신도 모르게 두 눈에는
눈물이 주루루 흘러 내렸다.
미안해요 구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요
하는 말 밖에 할수 없었기에,,,,
,,,,,,,,,,,,,,,,,,,,,,,,,,,,,,,,,,,,,,,,,,,
그런 다음 그 곳 영정을 하나 하나
보니 눈물이 차 올랐다.
충분히 구할수 있는 목숨이었는데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리고 그곳을 둘러보니 가족들이 하나 같이
넋을 놓고 좌절하여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손이라도 잡아주며 위로 해 드리고 싶었지만
그런 내가 오히려 건방지게 느껴 질것
같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럴수 조차 없었다.
그저 고개 숙이며 묵언으로 인사를 나눌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저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제대로 끼니 조차도 챙기지 못하고
그래도 건강을 챙겼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
떠나는 이들이 대부분 학생들이다 보니
채 피우지도 못한 예쁘고 예쁜 꽃 봉우리들
아름다운 어린 청춘들 ,그들 모두의 넋을 뉘라서 제대로
위로 해 줄수 있을 것이며 남은 가족들 또한 평생을
잊지 못하고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할텐데,,,
그때마다 동갑의 학생들이 성인이 되었을때
모습을 본다면 뒤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어야 할 것이고
가슴 밑바닥에 큰 바위로 눌러 놓았던
시리고 아픈 마음이 불쑥불쑥 자신들도
모르게 살아 숨쉬며 치고 올라올 텐데
또 그때는 어찌 감당해 낼까,,,,,
모두가
누구의 부모이고 형제이고 자식인 그들
살아있는 가족들에게 한마디
이별 통고도 없이 영영 떠나버린
그들
작은 위로라도 해 주고 싶어서 마음먹고 갔었다.
조문 온 이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저마다 위로의
기도를 하면서 명복을 빌어주고 가슴 아파하며
발길을 돌려 주위를 살펴 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