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지나가고 쌀쌀한 바람과 함께 찾아온 가을
들에는 노랗게 익은 벼들이 하나, 둘, 추수되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움직임 속에 찬바람은 가을을 재촉한다.
개구쟁이 아이들은 이곳저곳에서 시끌벅적 야단이다.
개울가(갱빈)로 나락 논으로 메뚜기 잡으러 뛰어다니고,
염소먹이는 소녀는 파랗게 남은 풀이 다 사라지기 전에
하나라도 더 뜯어 먹이려고 이곳저곳으로 옮겨준다.
떨어진 벼 이삭을 하나라도 다 주워간다.
소먹이는 아이들은 산에 널려있는 밤나무 열매(알밤)을
주워 먹으면서 즐거운 함성을 지르며 뛰어다닌다.
나는 집에서 조롱골 밭을 오가며 길옆에 있는 영옥이네
밤나무 밑에서 떨어지는 알밤을 줍는 것이 기쁨 중에 최고의 기쁨이다.
그래서 밭에 가는 길이 즐겁다. 밭에 갈 때도 밤나무 밑에 들러서
떨어진 밤을 줍고, 집으로 올 때도 밤을 줍는다.
그 밤나무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유는 밤이 다른 집 밤알보다
몇 배나 굵고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해마다 가을이 기다려진다.
그리고 밭에 가는 것이 즐거웠다. 밤을 주워 다가 추석에 잘 사용하고
또한 엄마한테 칭찬받는 것이 좋았다. 그곳이 아니더라도
그 때는 어디든지 산에 가면 밤나무는 많았다.
밤나무가 아무리 많아도 영옥이네 밤나무처럼 크지가 않았다.
지금은 어른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 때를 생각하면 그 곳에 가고 싶다.
지금은 나무들이 자라서 내가 다니든 길은 수풀이 우거지고
영옥이네도 이사를 가고 없다. 주인을 잃은 밤나무도 외롭고,
그곳을 생각하니 나도 외롭다. 하지만 그때 즐거웠던 추억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