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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잃은 아기고양이


BY 플러스 2007-11-26

마음이 많이 약해졌던 한 주간이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또는 사실 무근의  음해인 것인지,   또는  심하게  왜곡되고  부풀려진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접한  폭로성의  글들을  읽고  심한 분노감 마저  느꼈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회적으로는  벌써  한 바탕  폭풍을  겪고  지나갔을  일들을  한국에  있지 않았던  칠 년 여의 공백을  두고  이제서야  접하게 된  내게  그것은  정신적인  방황을  혼자  감내해야  하는,   어떤  방식으로든  받아 들여야  하는 일이  되었던  것입니다.

 

논리적으로이성적으로  크리스찬들의  영적 근간 마저  뒤흔들고  싶어하는  단체에  속한 사람들의  글도  몇 편  읽었습니다.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글 가운데에서  한 편,  '여호와께 내가 몇 가지  진정으로  물어보겠다'라는  제목으로  쓴 글은  나의 심각한  마음  상태를  두고도  설핏  웃고  말게했습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부분적으로 밖에는  창조주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한계를  인간의  인간됨의  한계를  긍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사유를  그 분은    출발점부터  잘못  잡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논박을  비롯하여  다른  몇 개의  글들 또한  바로 앞과  뒤만 보면  하나 하나씩  제대로  연결된  듯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는뒤틀린  논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나이다운  담대함의  태도는  내게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정하고  부패한  성직자라는  고발성의  글들은  내 마음을  너무나  어둡게  했습니다한 편으로는  한국에  있는  수많은  교회와  그 교회들을  담당하고  있는  분들의  많은  숫자에 비하면  극히 적은,   손으로  꼽아볼 수 있는  숫자 정도인  분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도  보려했고,     한 모임에서  무종교이나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남자분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한국 내에서  보여지는  기독교 단체나    구성원들의 사회에서  지적되어지는  문제점들이  내게는  한국  사회에서  보여지는  문제점과  그리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고  결국은  같은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지는  문제점으로  보인다고  대답한  것과  같은  설명으로  위안을  삼아 보려고도  했지만    분노감이나  허탈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심리적인  평안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에  모습으로는  본 적이  없는  아기 고양이와  맞딱뜨리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  밤 열 한 시 경에서 부터  울음소리로만  만나게    아기 고양이는  그날  밤새도록  울어댔고,   그 애절하게     때로는   화가 많이 난 듯  앙칼지게  울어대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그 다음 날  오후부터  위쪽으로  멀어지기 시작하여   다음 다음 날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에도  한 동안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목요일 낮 최상층인  12층에서부터  가느다랗게  들리기  시작했다는  고양이  울음소리는  아이들이  많아    분주한  소리가  많은  11층에서  오래 머물었으며,   아기고양이가  어두워서  무서울까  염려한  내가  켜놓은  불빛 탓인지  목요일  밤과  금요일  오전은  10층인  우리집의  내관벽 통로의  어디 쯤에서  계속  헤매었던  모양이었습니다.

 

밤새도록  아기 고양이의  울음에  거의  반수면 상태로  시달린  나는,   그 애절한  울음소리에  동화가 되었던  것인지  한시라도  빨리  고양이를  구출해 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금요일  하루를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밤이 지나자마자  이곳  저곳에  전화를  하고기다리고     알아보고몇 번씩  독촉하고  하는  일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말은  서로  달라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낳은  것으로  움직일 수 없는  고양이다,   배관통로로  잘못 들어선  거다로  나뉘었고  방법에 있어서도   욕실 천장을  다 뜯어내어  사람이  꺼내는  방법 밖에 없다,   욕실 벽을  부셔서  통로에  구멍을  내고  고양이를  불러보는  방법 밖에  없다..라든가  하는  것이었지만  어떤  방법도  나는  취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인터폰으로  신고를 한 윗집과  최상층의 집을  방문하여  이야기를 듣고  고양이가  어떤  경로로  어떤  방식으로  움직여  왔는 지를  추측해보고,   그리고는  우리 집 욕실이  입구라고  오해하지 않도록  불을  끄고  욕실 양쪽  문을    닫아  집 안의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떠나지  않을 것 같던  아기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조금씩  멀어져갔으며  다시  밤이 지나고  다음 날에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딸 아이나  내가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내내  걱정한 것처럼  통로 속에서  헤매다  죽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미 고양이가  들어와  인도해갔든  혼자  나갔든  위쪽으로  다시  올라가  통로를  무사히  나갔다고  보여집니다.  

 

그렇게  믿어짐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는  죄책감과  무력감  같은  것이  며칠 동안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아기 고양이가  바로  환풍기  안 쪽에  그처럼  가까이  있었는데,   천장을  뜯고  다시  붙이는  몇 십 만원의  비용이나  벽을  부셔서  뚫고  다시  타일 공사를  하는  비용이나   수고로움을  겪고 싶지 않아서  너는  소극적인  행동을  한 것이  아니냐...하는  자책감인 것이며,  그처럼 애절하게  바로 옆에서  손에 잡힐 듯  밤새도록  울어댄  불쌍한  생명체인   아기 고양이를   나 스스로의  힘으로  구해주기를  결국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나 자신이라는  한 인간에  대한  무력감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내가 한 일이  앞서 말한 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나는  안방 욕실의  컴컴한  통로에  조용히  앉아  때로는  멀어지고  때로는  가까와지는  아기 고양이 울음소리에  귀기울이며  기도하고   길을  찾아    빠져나가기를  마음을  모아  바라고  있기를  여러 번, 그리고  오랫동안  했던 것입니다.

 

고양이를  구해내려고  이리저리  애썼던    저녁아이들에게  길을  찾아  밖으로 나가는    그것은  아기고양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고,   엄마가  켜 놓은  불빛이나  다정하게  아기고양이를  위로하며  말을  걸어 준  것은  아기 고양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을  지체하게  만든  것이었다는 것을  알았노라고   교훈의  마음을  담아  이야기했지만,   그날    나는  혼자  울었습니다,   전날  밤새도록 들린 아기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너무나  깊이  뇌리에 박혔던  모양이었습니다.  

 

나 자신에게도  교훈을  삼아    자책감이나  무력감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너무나도  도와주고  싶었던  모앙이었습니다.

 

오늘  며칠 만에  주님 앞에  마음을  담아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는  내 심령  깊은 곳에서  주님께  기도하기를  원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일인양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의심을  버리고  믿는  마음으로  나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복종시키자   주님을  향한  기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과도  다른  부드럽고  상냥하고  아름다운  밀어같은  언어가   내게서  흘러나왔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나의  갖가지  소극적이고  부정적이며  무력하기만    감정들이  녹아 내리는 것을  느끼며   주님 안에서  나누는  따뜻한  사랑의  언어들이  나 자신의  심령을  치유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질이  아닌또한  주님이  하시고  하실  일을  바라보고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빠지기  시작한  나 자신의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주님은  그렇게  치유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는  한 주일 내내 내 마음을  번민케 하며  박혀 있던  가시를  쏟아내었습니다주님 안에서  같은  형제된존귀한  분들이  이 사회 안에서  가진 영향력의  깊이 만큼    부정적인 여파로  끼쳐진  악으로  인해,  이 사회에  오히려  위기를  가져올    있을  일들을  행했음에  대하여   아파하고  울었던  나는  이미  자신의  심령만이  아니라  주님이  느끼시는   깊은  사랑과  아픔으로  함께  느끼며   통곡하는  자였던  듯 합니다.

 

어쩌면  길 잃은 아기 고양이의  존재감 밖에  되지 못할  나 자신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거의  없는  존재일런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을  향한주님 안에서의  기도 안에서  나는    어쩌면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인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