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 종일 안개가 자욱하더니, 오늘 아침 옅은 안개 속으로 지나는 동안, 들판을 가로질러 선 나무들에서부터 거리 거리에 선 나무들이 온통 하얀 옷을 입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눈꽃이 아닌 서리꽃으로 가지 가지마다 뒤덮힌 나무들은 한창 만개한 꽃들 안에 있는 것처럼 아름다왔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그 풍광에 한 눈을 파느라 갑자기 속도를 줄인 앞차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가벼운 접촉을 일으킬 뻔 하였습니다.
아우토반을 들어 설 무렵에서야 오늘따라 거대한 화물차량이 많음에 정신을 차리고 달리기 시작하여 음악원에 도착했습니다. 이 주 전, 하던 곡을 두고 갑자기 모짜르트를 한 곡 해 보자고 하시며 내미셨던 곡을 들고 였습니다. 그 즈음, 250 주년을 맞는 모짜르트의 생일을 맞는 때였기 때문에, 선생님은 모짜르트의 음악을 함께 하고 싶으셨던 듯 합니다.
지난 주에 이어서 오늘도 선생님은 모짜르트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하셨습니다. 그의 음악에 대한 해석을 두고 어떤 지휘자가 한 이야기, 또는 어떤 피아니스트가 한 이야기, 또 나름대로의 그의 음악에 대한 평가 및 곡 해석 등에 대하여 말이지요. 정작 곡에 투여되는 시간이 적어지는 것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만큼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셨지요.
그리고, 모짜르트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 선생님의 코와 눈이 붉어져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음악들은 그의 모습이나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모짜르트의 캐릭터처럼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어린 시절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작곡된 어느 작품 하나도 그 완성도의 측면에서 흠잡을 데가 없는 '하늘로부터의 신동'이라는 그가 유년시절부터 내몰려야 했던 정황들, 오히려 일찌기부터 인간이 가지는 여러 가지 비애들을 보고 겪어왔어야 했을 그의 삶에 대하여, 또한 그의 생의 후반부에서 알아 주는 사람 없이 그가 손을 벌리면서 유지해야 했던 삶. 자신은 그의 삶에 관한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부분에까지 깊은 동정감을 가지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함께 할 이야기가 없던 나는 짤츠부르크의 모짜르트의 집에 두 번 갔었던 것과 그가 어린 시절 사용했던 작은 바이올린을 본 것이라도 이야기해야 할 정도로 선생님은 진지하게 많은 이야기를 하시고, 또 나누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잠시의 끼어듬에 기뻐하며 짤츠부르크와 빈에서의 모짜르트의 대조적인 삶에 관해 또 그의 아버지 레오폴드 모짜르트의 아들에 대한 훈육에 관해 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선생님이 이전에 내게 주신 낡은 한 악보집의 뒷 부분에 선생님의 글씨로 1970 년대의 어느 날짜와 자신의 이름, 그리고 빈이라는 장소가 서명되어져 있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선생님이 음악을 공부한 장소 또한 모짜르트에 대한, 선생님의 특별한 애정에도 관련이 있겠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티없이 맑고 천진하게 들리는 그의 음악들을 하나 하나 되짚어 가며 공부해 가는 중에, 그의 음악적인 언어들이 담긴 하나 하나의 구절들에서 새롭게 발견되어지는 애수라고 표현할 만한, 인간에 대한, 그 인간된 자의 삶에 대한, 선입견이 섞이지 않은 천진한 아이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듯한 애수가 문득 문득 내 감각으로 파고 들어왔던 것은, 그런 선생님의 이야기 때문이었을까요.
음 하나 만으로도, 또는 두 개의 음 만으로 만들어 내는 울림만으로도 공간을 꽉 채우는 아름다움과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고 들어오게 할만큼 감동을 줄 수 있음을 그의 작은 소나타 하나를 통해서 깨닫게 하는 레슨시간이었습니다.
레슨을 마친 뒤, 모짜르트의 음악을 그저 기교적으로 쳐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그의 음악을 이해하고 표현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며, 상당한 니보(Niveau) 가 필요한 것이라고 하는 말을 하실 때에, 그 말을 제자가 이해하고 받아들였음을 아신 선생님은 우리가 서로 어떤 동질감을 품게 된 것 마냥 기뻐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