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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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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하시고 준비하시는 하나님


BY 플러스 2005-10-27

때로  나는 마치 감각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같습니다.   그것은 마치 몽유병환자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스스로 걸어다니고  움직이면서도  아무런 의식이 없는 것 같을런 지도 모릅니다.   그저 일어나고  아침을 챙기고 또  내가 매일 하는 일들을 하고  또 잠자리에 들면서,  그 모든 일들을 하지만,  사실상  나의 의식은 깨어있지 않은 채로 움직이는 것 같은 거지요.

 

그런 때에 나는  마치 눈멀고 귀먼 것처럼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 내 손에  무언가를 잡았다 놓았다 끝없이 반복하는 것처럼 기계적인 반복 속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버리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 어떤 때에는 오히려 잠들어 있는 상태에서 나의 의식이 움직이며,  그제서야 어떤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에 드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리고는 꿈에서 깨어나  그 현실보다 생생한 영상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고 잠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날,  또는 그 다음날 쯤,  또는 그 며칠 후쯤에서야  그 꿈이 무엇과 관련되었는 지를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현실에서의 충격을 훨씬 덜하도록 꿈을 통해  완화하시고,  또한 그 현실에서의 일들 속에서  도움을 보내시어  나를 당신께로 더욱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잔잔한 흐름같은 일상은 언제나 겉보기에는 평온해보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그 일상의 평온을 두려워하며,  마치 언제라도 깨질세라 살얼음판 위를 걷듯,  두려워하며 조심조심 살아가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완전히 안도할 날이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지요.   그러나,  그런 예의주시하며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현명해보이는 삶 조차도  잠들어 의식없이 살기는 마찬가지이지요.

 

한 사람이 '평안'을  주제로 삼을만한 그림을 찾아 나섰다고 합니다.  

그는 많은 그림들을 살펴보았답니다.   아름답고  평화로와보이는 전원의 목가적인 풍경에서부터  엄마와 아기가  사랑으로 마주보는 눈길을 그린 그림들도 보았겠지요.  

수많은 그림들을 살펴본 그는 어느 그림에서도  그가 찾고자 한 '평안'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한 그림 앞에서 발을 멈추었답니다.   그것은  물이 거세게 쏟아져내리는 폭포와  그 폭포의 가운데의  작은 바위,   그 바위위에  위태하게 놓인 둥지속의  새끼 독수리를 그린 그림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언제라도  물살에 휩쓸려 들어갈 것 같아보이는 거센 폭포의 중앙에 선,  독수리의 흔들림없는 모습 속에서  '진정한 평안'을 보았다고 합니다.

 

아무런 두려움도  걱정거리도 없기 때문에 평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센 물살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평안이야말로  진정한 평안이라는 거지요.

 

그 그림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내게 또 다른 그림 하나가 떠오릅니다.   그것은  한 아이의 얼굴입니다.

 

예전에  결혼하고 나서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오후에  붐비는 백화점에서   여섯 살 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사람들 속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바빴던지  떠들썩한 속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인지,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핏보기에도  아이의 얼굴은  분명  무언가  큰 불안과 두려움에  질려  있어서  나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지를 물었습니다.   아이는  대답을  못한 채로  마치  기가  질린  아이처럼  울더군요.  

나는  아이의  어깨를  잡아  진정시키려고  애쓰면서  다시 물었습니다.   아이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엄마가  없어졌다'고  하더군요.   

나는 그 아이를  도와 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채,  다시 사정을  차근차근히 물었습니다.   아이는  점점  진정이  되는 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인 즉,  아이의 어머니는  자신이  샀던  물건이  맘에 들지 않아  다시  바꾸러,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  행사장을  향해  가면서,  아이에게  복잡하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면,  엄마가  이십 분 안으로  돌아오겠다고  그 곳에서 움직이지  말고  있으라고  했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  아이는  막상  엄마가  사라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소란 속에 홀로  있게 되자,   곧 혼란 속에  빠져  어찌 할 바를  모르게  된  것이지요.   엄마가  사라져 간  공간과  아이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이는  시야와  감각이  가리워진 채 단절되고  공황에 빠지게 된 것이죠.  진정이 된  아이는  엄마가  간 지  몇 분 되지도  않았음도  스스로  알았습니다.

 

나는  그런  사정을  알게  되자,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이십 분안에  돌아온다고  했으면  이십 분 안에  꼭 돌아오실 거야. '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고 받아들인 아이의 표정은  더 이상  울고 있던  꼬마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 날,  나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누구에게서도  보지 못한  확신과  믿음으로  꽉 찬 표정을 보았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아이의  얼굴에서는  걱정도  불안도  단숨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단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고 선 사람처럼  엄마가  사라진  방향의  앞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자신과 이야기하던  사람인  나의 존재조차도  완전히 잊은 채로 말이지요.  

 

폭포 속에 선 새끼독수리는  그런  신뢰와  확신으로  엄마독수리를 기다리고 선 것인 지도 모르지요.

 

 

평안.

 

 

많은 사람들이 하는 기도,  또는 바램은 그들이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이라기 보다는 '불행해지지 않기 위한 조건'이라 이름붙이는 것이 더 적합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현재 평온하다고 생각하는 일상 속에  거하는  삶이라도   그것이  언제 깨어질 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이 마음 속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기에  야베스의 기도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어느 누구든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시련들을 통하여  주님께서  더욱 성장케 하시며,   주님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알게 하도록 인도하시며,  그 모든 시련들 마저  합하여  선이 되게 하심을 알기에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그리하여,  내가  언제 어느 곳에  서 있든  '주님을  아는  진정한  평강'  속에  담대히 선  독수리같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나의 영원한 아버지되신  주님을,  아기가 엄마를  바라보듯,  새끼독수리가  어미독수리를  기다리듯,  확고한  신뢰로  가득한  눈으로  날마다  앙망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