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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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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맞이


BY 모퉁이 2011-01-14

이사를 하고 정식으로 손님을 초대하지 못했다.

지나는 길에 들렀다며 차만 한 잔 마시고 간 몇 사람이 전부다.

아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집들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부르기도 쉽지 않았다.

아무 때고 들이닥치면 어떻게든 맞을 마음은 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석 달이 지나버렸다.

 

가다마다 하는 아르바이트 일이 어제 끝으로 며칠 쉬게 되자

한번 가마고 노래하던 아르바이트 동료가 채근을 한다.

"언니, 차 마시러 가도 돼요?"

"그래, 아무 때고 와..언제..내일 올래?"

부담 갖지 말고 차나 한 잔 달랜다.

부담은 무슨...사람 사는 꼴이 다 그렇지,,아닌가 내 꼴만 그런가.

점심 시간쯤에 오라고 해놓고보니 점심 메뉴가 퍼뜩 떠오르지 않는다.

내 머리 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자장면이나 한 그릇 먹자고 먼저 코치를 해준다.

"그래..그러자. 자장면 시켜먹고 차 마시고 놀다 가."

 

허물 처럼 벗어놓고 늘어놓고 나간 자리 주섬주섬 줍고 치우고

명색이 손님이라고 오는데 화장실 청소는 좀 해야겠지.

딸내미 둘이 쓰고 나온 화장실에

머리카락이 수채구멍을 메울 지경이다.

휘휘 청소기 한 번 돌리고 주인 아지매 얼굴도 푸덕푸덕 씻고

어영부영 약속한 시간은 가까워 지는데

아무래도 자장면 한 그릇은 얌체 같다는 생각에

냉장고를 여기저기 들쑤셔보니

엊그제 사다놓은 시금치가 눈에 띄고 말린 표고가 있고

어찌어찌 해보면 잡채거리는 되겠다.

언제 쓸려고 비축해놓은 것이었노.

나란한 깡통 몇 개 중에 골뱅이 깡통을 따면

그것 또한 한 무침 되겠다.

국수만 삶으면 되겠네.

잡채와 골뱅이무침에 쓸 양파를 가지러 베란다를 살피다

단호박 하나를 발견했다.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설랑 얌전하게 팔등분을 해서

찜솥에 쪘더니 색깔도 예쁘게 잘 쪄졌다.

그렇게 해서 손님맞이 상차림을 하게 되었는데

잡채와 골뱅이무침과 단호박찜이 완성되고

국수물이 끓어갈 즈음 마침맞게도 문 열어 달라는 소리가 들린다.

자장면은 주문도 하지 못하게 하고

시원한 맥주 한 병을 곁들여 골뱅이국수는 안주도 되고 식사도 되었다.

거하게 차려 초대했으면 좋았겠지만

조촐하나마 기분 좋게  맛있게 먹어주니

그동안 미뤘던 숙제 하나 해결한 듯 내 기분도 좋았다.

 

친구들과의 만남을 대부분 밖에서 해결한다.

집에서 만나면 부담스럽다는 견해가 많은데

오늘 같은 이런 모임이라면 집에서도 할만 하다.

국수를 말아낸다던가, 수제비를 한다던가

비빔밥을 해서 나누거나, 김밥 몇 줄 말아 된장국을 곁들이는 정도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다.

 

얌전하게 덜어 내고 남은 잡채는

딸내미들 접시에 담아주면 좋아하겠다.

저녁 먹고 온다는 전갈이나 없어야 할텐데...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