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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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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 2


BY 모퉁이 2011-01-06

몸이 자꾸 늘어지고 코도 붓고 편도도 부었는지 아프다.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왜 이렇게 늘어지고 천근만근 물먹은 솜마냥 쳐질까.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는 뉴스를 보면서

그렇지. 이맘때면 항상 그랬어.

그래..그날도 엄청 추웠지.

새각시였던 사촌올케가 시삼촌 장례 치르느라  손발이 텄다고 했다.

아버지 돌아가신지 꼭 30년이 되는 해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는데 참 추웠다.

병원장례식장이 아닌 집에 차려진 아버지 빈소 앞에서

병풍 뒤에 아버지를 부르다 울다 꼴깍 잠이 들었던 그 날이 벌써 서른해 전이다.

초등학생이었던 막둥이가 마흔을 넘겼고

내 나이 쯤이었던 엄마가 이제 정신이 깜빡깜빡하는 노인네가 되었다.

 

아버지 제삿날 하루 앞두고 엄마집 방문을 여니

전기장판 위에 누웠던 엄마가

추석명일 쇠러 왔냐고 했을 때 억장이 먹먹했다.

작은언니와 막내가 미리 장을 봐다 놓긴 했지만

너무 미리 사다놓은 몇 가지는 버리고 다시 사야했고

다시 사다놓은 나무새를 어느새 갖다 버린 엄마의 이상행동이

또 한번 울컥하게 했다.

 

 

다섯딸이 다 모여 요양병원을 알아보고

엄마 설득작업에 들어갔지만

엄마의 그 옹찬 고집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자식 집도 싫다 병원도 싫다 내 집에 있을란다고 고집이시다.

혼자 두고 와야 되는 자식들 마음은 아랑곳 없고

하루에도 몇번씩 변하는 감정기복이

주변사람을 힘들게 한다.

 

별 동그라미 네모 세모를 그려놓고

엄마가 쥔 연필을 유심히 살펴보니

딴 길로 가지 않고 제 길을 잘 간다.

다행이다.

숫자를 줄줄 읽으며 기분좋은 아이처럼 적어간다.

다행이다.

엄마 이름 석자를 적어놓으니 망설임없이 읽는다.

내 이름 석자를 읽었을 때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엄마가 글을 모르는 줄 알았다.

나는 엄마가 글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노래방에 갔을 때도 그냥 생각나고 외운 가사인줄 알았다.

줄줄 막힘없이 읽지는 못해도

엄마 이름 딸 이름을 읽는 것만에도 흥분되고 감사했다.

 

사흘밤을 함께 하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자

오늘은 혼자 자야되냐고 하신다.

그러게..엄마 같이 가자고,,우리 집에 가자고,,

이내 싫다며 당신 자리에 버티신다.

 

골목 끝에서 딸내미 뒷자락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서 있던 합죽이 할매 울엄마.

두툼한 솜바지 하나가 그리 고맙고

몇 장 안되는 지폐를 속곳 깊숙히 모시듯 챙기고

1번부터 5번까지 순서대로 적어놓은

다섯 딸의 전화번호를 애지중지 하는 여든넷의 울엄마.

여든셋의 나이를 운명처럼 기억하던 엄마가

그 몹쓸 여든셋을 넘겼으니 그것또한 다행이다.

 

사랑초가 그 사이 몰라보게 키가 컸고

그 옆에 올망졸망 새끼를 거느리고 있다.

세 가닥으로 시작했던 것이

이제는 그 열 배에 가까운 대가족이 되어

한 울타리를 엮어가는 중이다.

 

건드리기만 해도 아찔하던 콧병이 사그라들어가고

편도에 생긴 염증도 며칠의 약처방으로 회복이 되어간다.

연례행사 같은 열병을 올해도 치르긴 하지만

엄마는 우리에게 그늘이고 바람막이이고 아랫목 같은 존재임에

쉽게 놓을수 없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