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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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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건지 모르는척 하는건지


BY 모퉁이 2010-09-24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화장실에 가셨나?

큰일을 보았어도 지금쯤이면 오셨겠지?

다시 울린 전화 역시 혼자서 울며불며 난리다.

이럴 때 나는 또 막내를 찾는다.

추석 전날 서울은 비폭탄을 맞았고

추석날은 남부지방에 비가 내렸다.

저녁 8시, 비가 와서 어디 나가지도 않았을테고

낮에 엄마집에 갔다가 한참 놀다가

지금은 둘째언니네서 다시 모였다는 막내의 말에

사뭇 안심은 된다만서도

아무리 잠결이라도 그렇게 울어대는 전화벨소리를 못 들으시다니..

엄마도 안스럽고

혼자 차린 차례상에 아픈 속을 달랬을 오빠생각에

다 저녁에 혼자 이불을 덮어쓰고 콧물 찍찍 찍어내는 마누라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둑삼매경에 빠진 남자는 그저 장고에 악수를 두었는지 쩝쩝거리며

자기 허벅지를 내리치며 아쉬운 탄성만 내지른다.

그런 남자 꼬라지가 야속해서 여자는 또 한번 코를 팽 풀어제킨다.

 

추석을 한 달여 앞두고 사촌올케가 유명을 달리했다.

태풍 곤파스가 몰려오던 날 황망히 내달려간 장례식장에서

허망한 죽음을 부여잡고 꺽꺽거리는 여자 앞에

나이 서른에 제 앞가림 서툰

말하기 좋은 사람들이 이르기를 좀 모자란다고 하는 조카가

고모왔냐고 묻는 눈이 천사같이 맑아서 또 한번 목구멍이 꺽꺽 막혔다.

나는 목구멍에 커다란 깍두기가 걸린 듯 한데

배가 고픈지 벌건 육개장국물에 밥을 말아 참 맛있게도 먹는다.

작으마한 키가 남겨놓은 유골을 담지 못하고 통곡하는 지아비와

무릎을 꿇어 사죄하는 아들은 무엇을 그리 잘못했는지

떠난 자는 말이 없고 남은 자의 오열만이 그간의 아픔을 말해줄 뿐이었다.

여전히 천사같은 눈을 한 서른살의 조카는

김밥을 먹고 하품을 하고 하얀 이를 내놓고 웃기도 한다.

 

일주일 뒤 다시 찾은 오빠네는 적막강산이었다.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되는데 기운 차려야 되는데

산 사람은 죄인이 되어 먹지도 못하고 이를 보이지도 못한다.

마냥 위로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살아야 한다고 저 모자라는 딸도 거두어야 되고

저 철부지 아들도 보살펴야 하는데

맥놓고 있을 수만 없다고 누나같은 소리를 한다.

환갑이 지난 늙은 오빠가 어깨를 들썩인다.

주르륵 무릎위에 묽은 액체가 툭 떨어진다.

그렇게 한 달여 지나고 맞은 추석날,

성묘를 다녀와 딴짓거리(바둑두기)하고 있는 남자는

마누라가 방문을 닫고 앉아 훌쩍거리고 있는 것을

모르는건지 모르는척 하는건지..

다음날 아침이 되도록 그 우울모드는 해제될 줄을 모르다가

산책을 하면서도 눈물이 나고

집안정리를 하는데도 문득문득 슬퍼지다가

못 이긴척 따라나선 기분전환용 매운해물찜 한 접시에

막힌 코를 뚫었다.

오늘

엄마는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시고

오빠도 점점 기운차려가는 듯하다.

삶은 이렇게 복잡미묘하다.

해서,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또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