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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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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입 나왔네


BY 모퉁이 2010-07-05

휴가차 쉬는 딸과 뒹굴뒹굴 그것도 오랜만이다.

게으른 모녀 점심을 식당밥으로 찍어놓고

마실가는 폼새로다 동네 고기집에 갔다.

대낮부터 숯불을 피워놓고 뺏어서라도 먹으라는 훈제오리를 구워

밥을 먹다가 그만 파절임을 입에 다 넣지 못하고 바지에 묻히게 되었다.

손을 닦으라고 준 물수건으로 주인 몰래 바지를 닦았다.ㅎㅎㅎ

사실 이 바지 외출용으로 입던 바진데 이제 동네용이다.

지난 번 연극을 보러 가던 날 입으려고 꺼냈더니

엉덩이 부분에 구김이 있길래 그걸 다리다가 그만 살짝 눌러 붙는 바람에 버린 옷이다.

아주 구멍이 난 것은 아니지만 흉이 남았다.

아끼다가 뭐 된다고...오래되지 않은 옷인데 아깝게 되었다.

딸내미한테 이러고저러고 된 옷이라 이제 버려야 될 지 모른다고 했더니

가만히 듣던 딸아이

"저번에 사 준 옷은 입긴 했어?" 하는데 쇠소리가 섞인다.

뭘 말하는 것이여 시방?

지난 봄에 노트북을 바꾸게 된 아이.

노트북을 받자 미안했던지 브라우스를 하나 사주더만.

약간 붉은색이 가미된 브라우스였는데

평소에 내가 입던 스타일도 색깔도 아닌데

딸아이도 괜찮다 그러고

매장직원의 어울린다는 말에 사긴 샀지만

 딱히 입을 기회도 없었고

때마침 출근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하는 일이 브라우스 치렁치렁 입기보다

간편한 셔츠가 제격이어서 그 옷은 옷걸이에서 내려보지도 못하고

계절이 바뀐 것이다.

가을이 오면 기회가 주어질랑가.

그러고 보니 딸아이가 사 준 몇 벌의 옷은 본전 생각이 난다.

선물이랍시고 돈푼이나 들었을텐데

매번 기회를 놓치고 계절을 넘겨버린다.

집순이로 외출이 잦지도 않고

평소 입는 버릇이 편한 것만 찾다보니

갖춰입고 챙겨입는 것에 약하다.

바지에 묻은 오물(?)을 닦아내는 에미를 보면서

"이제 옷 안 사줘~" 하며 야몰차게 내뱉는 딸내미.

말투는 냉정하지만 목소리는 떨린다.

사 줘도 입지도 않고 묵히는 에미가 싫은 모양일세.

 "그래, 올 가을엔 네가 사 준 브라우스 입고

네가 사 준 가방 들고

우리 오늘보다 더 멋진 장소에서 근사한 식사 한번 하자.

이제 잘 입을테니 바지도 좀...안 되겠니?"

이제는 없다는 말로 내 입막음을 하던 뽀로통해진 딸의 입술이 한번 더 실룩거린다.

 

**

비 온 뒤의 햇살이 반갑다.

베개도 널고 수건도 널고

그 옆에 나란히 널어놓은 바지는

빨간 물은 오간데 없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갛게 말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