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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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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쉽니다


BY 모퉁이 2010-05-31

딸아이 출근시키고 신문은 보는둥 마는둥 대충 접어놓고

모처럼 월요일 아침 티비뉴스를 보고 있는 남편을 혼자 거실에 두고

나는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다.

간밤의 체온이 남아 있는 이불 속이 따뜻하고 포근했다.

잠은 더 이상 오지 않았지만 이불 속의 포근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이불 끝을 코 끝까지 끌어 당겨 덮고는 오만 생각을 다한다.

아침 여덟시.

다시 거실로 나와 티비 속의 신혼부부 이야기에 빠져든다.

외과 전공의 3년차에 11개월차의 알콩달콩 신혼부부 이야기다.

이야기는 내일 또 이어진다는 예고를 남기고 끝이 나버리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지만 잠은 이미 달아났고 게으름이 자꾸 들러붙는다.

일어나야지.일어나자.

 

오늘은 쉰다.

5월 들어  시작했던 아르바이트도 끝났고

주말엔 남편의 옛동료들 부부들과 일박 이일로 옥천의 작은 휴양지에서 보냈고

오늘은 남편도 하루 휴가 중이라 같이 쉰다.

잠을 내보내고 게으른 아침을 둘이 먹었다.

평소에는 마즙 한 잔이 아침밥을 대신하는데

오늘은 둘이서 한 그릇 남아 있던 된장국으로 거의 마른밥을 먹었다.

설겆이를 하고 나니 남편이 커피물을 데운다.

커피를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우리집에는 일회용 커피 뿐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부부잔을 꺼내어 뜨거운 물을 부었다.

가끔 혼자 마시는 커피는 평소에 물잔으로 쓰는 머그잔에 마시는데

오늘은 제법 폼나게 커다란 꽃무늬가 예쁜 커피잔을 꺼냈다.

에구~커피 마시는 시간이 후딱 지났다.

물처럼 들이 마셨나 보다.

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렸는지 바닥이 축축하고

어느집에 이사를 가는지 이삿짐 차가 들어와 있다.

날씨가 좋으면 이불 빨래라도 했으면 싶은데

오늘은 쉬라는 뜻인지 날씨도 꾸물꾸물한다.

이런날 이불빨래는 금물이다.

아..뭐하지?

등산이나 갈까나 묻는 남자의 말에 날씨 탓을 하는 여자가

썩 좋아하지도 않는 찜질방타령을 한다.

등산을 포기하고 찜질방에 같이 간 남자.

간단히 샤워만 하고 나온 남자는

완전 목욕을 하고 나서 찜질방에 나타난 여자에게 짜증을 낸다.

서로 목욕순서가 다르다.

흐~그러다 이내 짜증을 걷어내고 건네준 맥반석 계란 두 개를

자기 머리에 쳐서 까먹고는

별 걸 다 챙긴다는 퉁박을 먹어가며 가져간 참외도 한 조각 먹어주고

매실액을 희석시켜간 음료도 마셔준다.

둘은 찜질방에 누워 땀을 질질 흘리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이며 척척하게 젖은 땀옷도 흉이 되지 않는

무장해제된 몰골로 앉았다 누웠다를 세 번 하고는

다시 몸 헹구고 머리도 채 말리지 않았는데

벌써 밖에서 기다린다는 메시지가 뜬다.

드라이로 머리 말리는데도 200원이 필요했고

으휴~그래 간다 가.

덜 마른 머리 채로 다니는 모습 별로 예뻐 하지 않는데

내가 오늘 그 머리 채로 나왔다.

바로 앞에 대기하고 있는 남자의 차에 올라 타고

집에 오자마자 냄비에 물 올리고 오이채를 썰고 양배추를 씻어서

비빔국수 뚝딱 한 그릇씩 해치웠다.

남자는 낮잠에 빠지고 여자는 우두커니 창밖을 내다보다가

토닥토닥 컴퓨터 자판을 두들긴다.

쉬는 날이다.

앞으로 쉬는 날이 많을 터인데 어떻게 쉬어야 될지.

재밌고 보람있게 쉬어야 될텐데 오늘은 연습이지만 좀 아쉽다.

바쁘게 쉬는 방법을 찾고 그렇게 살아야 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