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만 해도 연두색 일색이던 나무들이 일주일 사이에 녹색빛을 띠고 있다.
산벚꽃도 휘휘 꽃잎을 날리고 있고 개나리색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봄이란 계절은 너무도 짧다.
약간 덥다 느끼며 산책로 푸른 길에 취해있는데
시간나면 보자며 어설픈 약속 해놓고 지내던 친구의 전화번호가 뜬다.
북한산 자락 어느 암자에서 해마다 두 번 산사음악회를 한다.
우연히 등산을 갔다가 안내문을 보고 들렀던 봄 음악회가 좋아서
가을 음악회에 이 친구를 초대(?)했던 적이 있었다.
그 친구가 이번 봄 음악회 소식을 먼저 알고 내게 연락을 준 것이다.
나는 불자가 아니고 친구는 불자로 안다.
종교를 떠나 따스한 봄날 호젓한 산사에서의 작은 음악회는
친구와의 만남의 자리가 되어 주었다.
경사가 심한 산 자락에 자리한 암자에는
너럭바위라 불리는 넓고 커다란바위가 하나 있다.
수령이 몇 년이나 되었을까, 굵은 가지를 넓게 뻗는 상수리 나무가
그늘이 되어주는 바위는 작은 음악회의 훌륭한 무대가 되어주었고
5월이 가정의 달인만큼 효를 주제로 한 음악회란 설명에 맞게
회심곡이 듣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주억거리게 했고
어르신들로 구성된 합창단은 나이를 잊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여고시절을 부르는 할머니들의 의상이 여고시절의 교복이어서 더 정겨웠다.
춤과 음악이 있었고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도종환 님의
시 낭송 시간도 좋았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 종 환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주지스님의 노래솜씨도 일품이었는데
몇 해 전에 처음 들었던 노래는
-칠갑산-이란 노래를 약간 개사해서 불렀지 싶다.
홀어머니 두고 시집 가던 날을
홀어머니 두고 출가 하던 날로 부를 땐 왠지 시큰해지던 것을.
그 다음에 들었던 노래는 -이정표 없는 거리-라는 노래였는데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에서
참 많이 망설였던 출가의 길을 노래했나 혼자 생각했었다.
오늘은 효에 대한 노래를 한다고 했는데
내가 모르는 노래라 듣기만 했다.
마지막 앵콜곡이 -애정이 꽃피던 시절-이라 좀 생뚱맞다고도 했지만
스님이라고 첫사랑이 없었을까 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초대가수로 장미화 언니가 나와서는
그녀의 명곡 -서풍이 부는 날-을 -타이타닉-을
찬불가라는 -님의 미소-라 하던가. 그 노래도 처음 듣지만
멜로디와 가사가 참 듣기 좋았고 역시나 가수였다.
때마침 휘익 부는 바람에 벚꽃잎이 무대위에 뿌려지고
세 시간 여에 걸쳐 이어진 음악회가 끝났다.
국수 한 그릇에 절편 대여섯 조각이 점심 공양으로 받았고
작은 보시함에 넣은 지폐들은 관내 노인복지자금으로 기부를 한단다.
올라 갈 때 힘들었던 길이 내려오는 길은 조심스러웠다.
인생도 이런 고비를 견디고 이겨내야 편안한 길을 걷겠지.
도종환 님의 시가 입 안에 뱅뱅 돌았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그래..
인생사 고통없이 이뤄낸 영광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몇 번이고 되뇌이며 5월 어느 하루 내 삶의 갈피에 꽂혀질
이야기 한 장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