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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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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노래


BY 모퉁이 2010-04-16

 

누가 그들을 차가운 물 속에 가두었나.

누가 그들을 내 형제 내 가족 아니라고 생각할까.

서해상에서 일어난 해군 천안함 사건은 온 세상 사람이 다 가슴치고

울부짖은 안타까운 시간이었다.

실종자 및 사망자 가족 뿐 아니라 생존자 역시 편치 못한 육신을 다스리고 있다.

살아 남은 것이 죄인 양 고개 숙인 채 울음을 머금은 사병 및 여러 장병들을 대할 때면

과연 내가 저 자리 저 현실에 부딪쳤다면 어떤 심정일까 생각조차 하기 싫지만

이십여 년 전 한 때 군인의 아내였던 한 사람으로서 만감이 교차한다.

남편은 해군이었다.

결혼하고 7년을 군인의 아내로 사는 동안 남편은 배를 탔고,

결혼 하고 닷새 만에 출동을 나가 한 달 이십 일 만에 돌아온 남자다.

이번 사고가 생긴 대청도 부근은 남편도 드나들던 출동지이다.

일 년이면 반 이상을 헤어진 채 살아야 했고, 하루하루 일상은 편지가 대신했다.

첫째딸은  남편도 없이 혼자 낳았고, 옹알이 할 때 떠났다 뒤집을 때 들어오고

기어 다닐 때 나갔다 걸음마 할 때 들어오니, 아이는 아빠를 피해 엄마 뒤에 숨고

아빠는 아이를 안아보려다 눈시울을 붉혔다.

그 낯선 남자가 아빠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출근하는 남자는 '갔다오마'는 말 대신 '간다'는 말만 했다.

군인은 언제고 조국의 부름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돌아온다는 기약이 없고

군인의 아내는 그런 마음 놓아서는 안된다는 세뇌(?)를 받았다.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말을 하기까지 쉽지도 않았을 것이다.

군인이 천직인가 싶던 사람이, 군복을 벗고 양복으로 갈아 입기는 했지만

지금도 그 군인정신은 생활습관 곳곳에서 보게 된다.

눈을 감고도, 정전이 되었어도 찾을 수 있게 제자리를 지켜야 되는 사소한 물건들,

약속시간 철저히 지키는 것과 곧바른 걸음걸이가 몸에 익혀진 것 같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남편은 참 많이 우울해 하면서도 의연하려고 애쓰는 듯 했다.

남편은 말을 아꼈다.

강한 폭풍에 그 큰 군함이 가랑잎 처럼 흔들리는 위기도 겪었고,

내게 차마 말 하지 못한 숱한 경험이 있었다는 것을 알기에

그의 침묵에는 많은 말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안다.

저 어린 자식을 남겨두고, 저 여린 여자를 남겨두고,

부모를, 형제를, 친구들 남겨놓고 비명에 갔을 그들이 어찌 남의 일이었겠는가.

내 가족, 내 친구,내 이웃이 아니어서 다행이란 말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 슬픈 일이다.

한 주호 준위의 영결식을 보면서 눈이 젖어 있었다.

또래의 남자가 목숨 걸고 후배를 구하러 들어간 귀한 군인정신에 애도를 표하면서

어쩌면 한 번 쯤 스치고 지났을 사람일 지도 모르는 인연에 대한 연민이 깊었다.

남자는 같은 군인으로서, 여자는 같은 군인의 아내로서 느끼는 감정이 남달랐다.

지금도 군에 몸을 담고 있는 친구들의 근황을 들으면서 참 많이 슬펐던 날들이었다.

평택 해군아파트에 살고 있는 지인은 거의 말을 잃었다.

나도 저들 처럼 당사자가 될 수도 있음에 떨리는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이웃에 사고 배에서 생존자로 남은 이가 있어 더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사연을 전해들을 때마다 가슴에 돌덩이 하나가 누르는 것 같다.

하나같이 안타깝고 아픈 사연들을 가진 장병들이다.

좋고 편한직장을 누군들 원치 않을까.

환경이 생활이 군인이란 직업을 택하게 했나 싶어 많이 우울했다.

당장 내 조카 중에 한 명도 그 직업군인의 길을 걷고 있기에 만감이 엇갈리는 날들이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또 살아야 한다.

그들의 생활은 지금도 넉넉하지 못하지만 앞으로 더 힘들 수도 있다.

남은 자들이라도 꿋꿋이 일어나 살아 갈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말로만 영웅이라 칭하지 말고, 실제로 그들과 그 가족들을 보살펴야 될 것이다.

많이 힘들겠지만 좌절하지 말고 한숨과 눈물 대신 희망과 웃음을 보상 받아야 될 것이다.

훗날, 내 남편은 장한 군인이었다고, 내 나라를 수호하다 전사한 대한민국 해군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남아있는 대한민국 군인의 아내의 노래가 울려 퍼져야 될 것이다.

슬픈 노래가 아닌 희망의 노래로 힘차게....

 

*고인들의 영정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